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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우리말을 망치는 잘못된 높임법

by 한글문화연대 2013. 8. 16.

아, 그 말이 그렇구나(7)

 

할인점이나 은행에 다녀보았다면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텐데, 요즘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의 말투를 들어보면, 고객을 높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젖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고객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말을 하고, 말을 듣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듯하면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무분별한 높임법 사용이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나친 높임법이 우리말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사례를 몇 가지 들어 보자.


높임법은 말을 듣는 상대를 높이기 위한 말법이다. 그 사람과 관련이 없는 사물에는 주체 높임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보험설계사가 청약서를 쓰면서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또는 “생년월일이 언제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듣는데, 이 말은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되나요?”, “생년월일이 언제입니까?/언제인가요?”로 해야 올바른 높임법이 된다.


소개팅을 나갔는데, 상대방이 “집이 어디세요?” 하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우리말의 높임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때는 “집이 어디예요?” 또는 “집이 어디입니까?”라고 말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은행에서 “예금주가 아무개 님 맞으십니까?”라고 말하는데, 역시 높임법이 잘못된 경우에 해당된다. 이때는 예금주인 아무개 님을 높여서 “예금주가 아무개 님이십니까?”로 말하거나, 아니면 “예금주가 아무개 님 맞습니까?”로 해야 높임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은행에서 “오늘이 납부 마감일이세요.” 하고 안내하는 말도 “오늘이 납부 마감일입니다.”로 고쳐야 한다. 주체 높임법에 사용하는 ‘-시-’를 마감일이란 날짜에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판매원이 고객에게 “고장이 나시면 바꿔 드립니다.”고 하는 것도 물건에다 ‘-시-’를 붙이는 격이 되기 때문에 “고장이 나면 바꿔 드립니다.”로 말하는 것이 정확한 말법이다.


가끔 “전화번호가 몇 번이세요?” 하는 질문을 받는다. 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서 “전화번호가 몇 번이세요?”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말 또한 ‘-시-’를 남용한 표현이다. “전화번호가 몇 번이세요?”는 “전화번호가 몇 번입니까?”로 바로잡아 써야 바르고 정중한 표현이 된다. 다만, 상대와 관련된 사물이 주어가 된 경우에는 일부 사물에도 주체 높임법을 사용해서 높일 수 있다. 가령, “얼굴이 참 고우십니다.”라든가, “마음이 무척 넓으시군요.”라는 말은 높임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각각 ‘얼굴’과 ‘마음’을 높이고 있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성기지/ 한글문화연대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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