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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죽음 앞에 살아 새겨진 한글 - 김수인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1. 31.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김수인 기자

suin_325@naver.com

 

노원구를 지나다 보면 ‘한글비석로’라는 도로명주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계동부터 은행사거리를 지나 상계동으로 이어지는 이 길의 이름이 이렇게 붙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길 사이에 보물 제1524호인 ‘이윤탁한글영비’가 있기 때문이다.

▲이윤탁과 고령 신 씨의 합장 묘 전경

우리나라의 묘비 중 한글로 쓴 최초의 비석을 만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찾아가 봤다. 6차선으로 넓게 뻗은 도로 옆 ‘이윤탁한글영비’의 위치를 알리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찾아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이 팻말이 날려준다. 계단을 따라 오르니 도로 바로 옆임을 잊을 만큼 넓은 땅이 펼쳐졌다. 석상과 묘, 새로 세운 비석과 기존의 비석을 품은 보호각과 안내판이 보였다. 기존 비석은 있던 자리에서 15m 떨어진 곳에 옮겨져 보호각 안에 그야말로 보호받고 있으며 노천에 새로 세운 비석은 원래 비석의 한자 문구도 한글로 해석해 새겨졌다.

▲ 보호각 아래 놓인 한글영비와 안내문

지금의 태릉 자리에 있었던 이윤탁 묘는 문정왕후 윤 씨의 묘를 그 자리에 만들게 되면서 이곳에 있던 부인 고령 신 씨 묘로 이장됐다. 이 비는 1536년(중종31)에 이윤탁과 그의 부인 고령 신 씨를 합장한 묘 앞에 그의 아들 이문건이 세운 것이다. 특히 한글로 새긴 비석 측면의 문구는 새롭게 조성된 묫자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주의하라고 경고하기 위한 내용이다. 비의 양옆에 한글과 한문으로 각각 경계문을 새긴 것이다. 비의 왼쪽에 영비(靈碑)라는 제목으로 30자로 된 한글 비문을 살피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새로 놓은 한글 비문

 

현대어로 번역하면

 

“신령한 비다. 쓰러뜨리는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이를 한문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

 

오른쪽에는 한자로 비를 훼손하지 말라는 비슷한 내용이 ‘불인갈(不忍碣)’이란 제목 밑에 새겨져 있다.

이 비는 현재 남아있는 한글로 쓰인 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에서 국어사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한다. 비록 한글이 이미 반포됐지만 조선 시대엔 한글로 비석을 새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남아있는 한글 비석 수가 잘 보여준다. 현재 3점이 남아있는 한글 비석 가운데 이 한글영비를 제외한 2점은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 게다가 비석에 쓰인 한글 서체 역시 「훈민정음 해례본」과 「용비어천가」의 중간 성격을 지녀 서체 연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 한글영비 옆면 한글 비문

직접 본 한글영비는 오래된 문화재인 만큼 새긴 글자가 많이 흐려져 있었다. 보호각 아래 조명도 없어 어두운 와중에 울타리 틈새로 얼굴을 들이밀고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한글영비. 하지만 그렇게 만난, 역사 속에서 깎이고 깎여 희미한 한글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유적 답사를 원한다면 서울 노원구 하계동 12번지로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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