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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앞당겼다.

by 한글문화연대 2014. 3. 4.

[우리 나라 좋은 나라-22] 김영명 공동대표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앞당겼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이 비슷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있다. 주로 박정희 옹호자들이겠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박정희가 산업화를 선도했고, 그 결과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교육 수준도 높아져서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를 시행할 바탕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가 일어설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말기에는 뭔가 매우 찝찝하다.


마치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고 박해한 덕분에 한국 민족주의가 발달하고 한국인의 애국심이 강해졌다고 말하는 것 같다. 또 노예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노예들의 투쟁 정신이 높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예들을 가혹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부처님은 우리를 괴롭히고 짓밟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여 우리를 단련시키고 부처의 세계에 가까이 가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매우 거룩한 말씀이고, 어려우나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한답시고 때리고 짓밟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결과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 자체는 악하고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자유를 짓밟은 것은 아주 잘못한 일이다. 그 덕분에 우리의 민주 의식과 투쟁 정신이 높아져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는지 아닌지—이를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에 관계없이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짓밟은 것은 아주 잘못한 일이다.


박정희가 없었어도 우리 경제가 도약했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이 박정희 덕분인지 우리 국민 모두의 덕분인지도 따지기 어렵다. 하지만 박정희가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끌어 나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만큼의 공로는 마땅히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짓밟은 것이 과연 필요했는지 아닌지는 논란거리이다. 내 생각으로는 “지나치게” 짓밟은 죄가 있다.


박정희는 자신이 추진한 산업화가 성공하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가 드세어질 것을 예견했을까 못했을까? 아마 처음부터 예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배가 불러오고 등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물질적인 것 이상의 뭔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가 좀 나아지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니 당연히 민주주의를 요구하게 되었다. 박정희의 비극은 이러한 변화에 제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독재를 계속한 데 있다.


박정희가 한국 민주주의를 앞당긴 것은 분명히 아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할 의사가 없었지만, 산업화를 주도하여 민주주의를 안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다. 세상의 아이러니다. 이와 비슷한 세상의 아이러니는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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