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23] 김영명 공동대표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동남아의 한 불교 수행자가 강연을 다닌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기도 한다. 동남아의 불교는 이른바 소승불교로서 개인의 수행을 매우 중시한다. 한국 불교보다 더 엄격한 계율과 수행을 중시한다.
그가 하루는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그의 수행 생활이 얼마나 엄격하고 힘든지를 설명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손수 물을 긷고 밥을 하고 거친 밥을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성생활은 물론 할 수 없고 술도 못 마신다. 오후나 밤중에는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얘기도 최소한으로 해야 하고, 스포츠도 하면 안 된다. 사바 중생들이 즐길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듣던 어느 수감자가 “스님, 그렇게 힘들게 사시지 말고 그냥 여기 와서 우리 하고 같이 계시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동료 수감자들이 왁자하게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감자는 스님에게 농담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고 한다. 자기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스님의 어려운 금욕 생활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수감자의 생활보다 수행자의 생활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수행자가 더 춥고 배고픈 생활을 하기도 다반사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물론 수행자 중에서도 수행이 잘 되지 않거나 윗사람이 부당하게 억압하여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수행자는 그들이 원하여 수행을 한다. 그 반면 교도소 수감자들 가운데 그들이 원하여 스스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행복과 고통이 다른 것은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그것이 자신이 원래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그는 고통을 느낄 것이고, 아무리 남 보기에 어려운 삶이라도 그 삶이 자신이 원하여 선택한 것이라면 그는 보람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감옥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부모님의 의지나 때로는 실수에 따라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던져진 다음에 자연 수명을 누리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 죽고, 어떤 이는 어려서 죽고. 어떤 이는 평생 불구가 되고, 또 어떤 이는 이런저런 불행과 속박 속에 얽매여 산다. 수많은 고통과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우리 인생은 일종의 감옥이다.
그러나 그 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 반대로 살면서 수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 누가 나를 기억해주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어린아이가 갓 태어나 우렁찬 울음을 울 때,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잔설 사이로 돋아나는 새싹이 보일 때, 청명한 하늘에 피어난 새털구름이 갑자기 눈앞에 다가올 때, 잊었던 연인이 생각지도 않게 연락해 올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만고의 진리다. 위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떤 장소든 당신이 그곳에 있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무리 안락하더라도 당신에게는 그곳이 감옥이다.”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면, 그것은 감옥이다. 원치 않는 관계를 끊지 못한다면, 그것도 감옥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당신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고 고통도 아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위 불교 수행자의 말과 같은 말이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의 지혜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쩌랴! 어려워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감옥은 물론 바깥에도 있지만 마음 속에도 있다. 아니 마음 속에 있는 감옥이 밖에 있는 감옥보다 훨씬 더 모질고 끈질기게 사람을 괴롭힌다. 바깥의 감옥을 어쩌지 못한다면 마음의 감옥에서라도 나오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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