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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나이를 먹으면 왜 꿈이 없어질까?

by 한글문화연대 2014. 2. 7.

[우리 나라 좋은 나라-21] 김영명 공동대표

 

어릴 적에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나이 먹으면서 그 꿈이 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 내 생각을 하면, 나는 어릴 적에 별로 꿈이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그때 나는 만화가와 야구 선수가 꿈이라고 했다. 누구에게 말했는지 그냥 혼자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은 그냥 막연한 상상이었지 '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기에 중학교 선생님은 판사가 되는 게 좋겠다고 말하신 것 같고, 나는 과학자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학교나 주변에서 전부 판사나 과학자를 미래의 이상적인 직업으로 여겼고 어린 나도 그 얘기들을 알게 모르게 들었기 때문에 덩달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 내 취미와 관심을 살린 미래의 꿈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게는 꿈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듯싶다. 그저 학교에 가니 공부하고 시험 치니 시험 공부했을 뿐이라는 말이 옳다. 대학교에 가서도 학점 따기 위해 공부했다. 물론 정치학이나 국제정치학, 정치사상 등의 과목들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다른 과의 과목들--불어라든가 미학 과목들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었다. 오히려 미래는 불투명했고 현재는 방황했다는 말이 옳겠다.


특히 외교관 시험이나(외교학과에 다녔다) 회사원 생활은 미래 진로에서 원천 제외했던 터라,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우선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당장의 목표이자 진로였는데, 이를 북돋우기는커녕 "돈 있는 집 자식만이 공부해야 한다."고 기를 꺾던 교수님이 지금도 원망스럽다. (그 교수는 유신 정권에서 한 자리 했다.)


어쨌든 이리저리 하여 나는 공부를 계속했고 하다 보니 교수가 되었다. 교수가 되겠다는 꿈  때문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무엇이 안 되겠다고만 정하고 되는 대로 맡겨둔 결과가 아닌가 한다. 교수가 되어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자주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인생을 설계하라, 시간을 아껴라 따위의 말들을 할 자격이 없고 또 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한 마디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내가 시작하려던 꿈 얘기는 그런 꿈이 아니라 진짜로 잘 때 꾸는 꿈 얘기였다. 우리는 살면서, 그리고 자면서 온갖 꿈들을 꾼다. 슬픈 꿈, 즐거운 꿈, 낯선 꿈, 이상한 꿈... 그 중에서도 단연 이상한 꿈이 제일 많으리라.


평소에 받는 스트레스가 꿈에 잘 나타난다. 나는 수학 시험 치는 꿈과 몸을 물 위에 반쯤 내놓고 날아가듯 헤엄치는 꿈을 많이 꾸었다. 수학 시험 꿈은 예전에 끝났고, 헤엄 꿈은 몇 년 전까지 꾸었다. 왜 그런지 알겠지?


그리고 이가 옥수수 알갱이처럼 빠져나가는 꿈도 많이 꾸었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던 10 여 년 전 얘기다. 미국 유학 시절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20대 후반 30대 중반까지(아니 40대 중반까지였던 것 같다)는 가위눌림도 당했고, 자면서 신음하거나 심지어 고함까지 쳐서 마누라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건강이 안 좋아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뭐 특별한 병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체력이 약한데다 술 마시고, 또 춘천으로 직장을 다녔으니, 매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체력이 좋아져서 그런지 그런 꿈을 안 꾼다.


가장 우스운 꿈은 어떤 사람이 날 때렸는데 (아니면 내가 남을?) 내가 날아가면서 지우개가 되어 떨어지는 꿈이었다. 뭐야 이거 정말? 프로이드야, 넌 알겠니? 아무리 생각해도 개꿈이랄 수밖에 없고 해석이 안 된다. 아마 그날 지우개가 없어서 뭘 못 지웠나보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개꿈도 점점 안 꾸게 된다. 건강이 좋아져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 먹고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꿈은 아니지만--반꿈이라고 할까?-- 특히 낮잠 잘 때 (아니 자다가 어렴풋이 깰 때), 뭔가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잠시 하숙을 했는데, 학교가 끝나고 4-5시쯤에 하숙방에 돌아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틀어놓고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나를 아련한 슬픔으로 깨우곤 했던 노래가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었다. 지금도 그 아련한 구슬픔은 그대로 느껴진다.


그 뒤에도 꽤 나이 먹을 때까지 그런 선잠의 아련함을 느끼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렸다. 이건 필시 건강 회복 따위가 아니라 늙은 무감각 때문이리라.


이런 경험과 또 그 변화를 다른 사람도 겪는지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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