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20] 김영명 공동대표
두어 해 전인가 신문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어떤 남자가 여자와 헤어지면서 여자의 요구로 자신의 정자를 제공하고, 앞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은 그리하여 태어난 아기를 남자의 친자로 인정하고 양육비 제공을 의무 지웠다고 한다. ‘웃기는 남녀로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자든 난자든 남에게 제공하여 생명을 탄생케 하는 것을 법으로 허용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나? 특히 정자 은행을 통한 무작위의 제공 말이다. 그러면 정자를 준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자기 자식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꼴에 처하게 되는데, 그래도 되는 것일까?
특히 정자 제공이나 난자 제공에는 돈이 따르게 될텐데, 이는 결국 인간 생명체를 돈으로 사고 파는 짓 아닌가?
불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불행한 사람이 한둘이고 불행의 종류가 한둘인가? 톨스토이가 말했다. “행복한 사람은 한 가지 모습으로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만 가지 모습으로 불행하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한둘인가? 그 불행을 덜어주기 위해 돈 많은 사람이 당연히 그에게 돈을 나누어주어야 하는가?
적어도 자식 없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불행의 정도로 따지면 불임의 불행은 그 정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 남의 불행 덜기가 윤리 문제를 상쇄할 수는 없다.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아비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익명의 정자 제공은 허용하면서 왜 매춘은 한사코 불법으로 규정하고 없애버리겠다고 야단인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말이다.
매춘이 왜 나쁠까? 자기 몸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이고 남에게 나쁜 짓 하는 게 아닌데... 자기 몸을 이용하여 돈 버는 것은 류현진도 김연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매춘과 같이 볼 수는 없겠지만, ‘몸을 판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매춘은 지금 우리의 윤리에 맞지 많을지 모르나, 오히려 성에 목마른 사람을 돕는 행위도 될 수 있다. 남을 마사지 해주고 돈 받는 것은 왜 비윤리적이지 않고 성관계를 하고 돈 받는 것은 왜 비윤리적일까? 물론 그것은 해당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탄생을 주고받는, 정자 제공 행위는 불법이 아닐 뿐더러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까?
그럼 원하는 여성에게 남자가 병원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성관계를 통해서 정자를 제공하면 어떨까? 아무런 감정이나 사랑, 이런 것 없이 단순히 정자 제공을 위한 성관계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쾌락이 동반되겠지만... 시험관 아기를 위한 정자 제공은 되고 자궁 아기를 위한 정자 직접 제공은 안 되는 것일까? 왜 그럴까?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이 문제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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