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27] 김영명 공동대표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든 넘게까지 사셨다. 비교적 오래 사신 편이다. 외할아버지만 요절하셨다. 아버지는 여든 여덟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흔 하나이신데 아직 계신다. 우리 보모님 세대에서 여든을 넘기는 것은 보통이다.
우리 세대는 최소한 아흔일 것이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도 아흔까지는 살 것이다. 우리 자식 세대는 백 살이 기본이 될지 모른다. 사람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영양이 점점 좋아지고 의학 기술이 점점 발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60년을 살고 있다. 생각하면 무척 긴 세월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또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라고... 그밖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하면 몇몇 가지 생각나기도 하지만, 과연 거기에 예순 해라는 햇수가 필요했을까?
생각나는 나날들보다 생각나지 않는 나날들이 훨씬 더 많다. 그 생각나지 않는 날들에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먹고 자고 일하고 즐거워하고 속상해 했을 것이다.
이런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구의 자원을 갉아먹으면서 지나치게 오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 매일의 생활이 변함없고 무료한 사람일수록 그런 생각이 더 들 것이다. 그렇다고 죽기는 두려우니 지금 죽을 수도 없다. 그저 다시 지구의 자원을 축내면서 목숨을 이어나간다. 하루하루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요즘은 의학 발달로 사람의 목숨이 더 질겨져서 오히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은퇴한 지 수십 해 동안 돈벌이 없이 살아야 하니, 이를 감당할 사회의 비용이 점차 커지고 있다. 사회적 생명이 이미 끝났을 뿐 아니라 생물학적인 생명도 사실상 끝난 상태로, 뇌나 심장이 살아있다는 까닭으로 의미 없는 삶을 연장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노인 개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노화 방지를 위한 연구는 계속되는데,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이 제 한 몸 가누지도 못하고 남에게 의지해가면서 백 살을 살면, 그 노인은 행복하고 그 사회는 건강할까? 노화 방지 연구, 장수 비결 연구보다는 오히려 불치병 치료 연구에 더 힘을 기울이고 사회 복지 확충에 애를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서른 해는 더 살 것이다.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 동안 나는 무슨 뜻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같은 삶의 되풀이라면 그저 목숨 부지밖에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죽기도 두려우니 정말 불교 가르침처럼(원래는 힌두교 가르침이란다.) 생명이 돌고 돈다면 이쯤에서 그만 돌아가시고 다른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아마 지렁이? 딱정벌레? 개미핥기로?
그러나 이 또한 부질없는 생각이다. 죽기 싫어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이니,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단지 사회 분위기가 특별히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부추기지 않고 적당히 살다 가는 데서 만족을 느끼도록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인간의 탐욕도 조금은 줄어들고 사회 갈등도 조금은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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