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35] 성기지 운영위원

 

출근 시간이 10분이나 지나서야 김대리가 생글거리며 들어온다.
“좋은 하루 되세요.”
화를 참고 있던 부장에겐 생글거리는 미소도 얄밉고 인사말도 거슬린다.
“좋은 하루가 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 이 표현은 우리 사회에 이미 널리 퍼져서 굳어져 있는 인사말이긴 하지만, 우리 말법에 맞지 않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곧 ‘되세요’라는 부분이 문제인데, ‘되다’라는 낱말은 본디 “부장님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다.” 따위로 쓰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예이다. 여기서 ‘부장님’과 ‘너그러운 사람’은 결국 같은 격이다. 그런데 부장에게 좋은 하루가 되라는 것은 사람을 ‘좋은 하루’와 같은 격으로 본다는 것이니 크게 잘못이다. 이 인사말은 “좋은 하루 보내세요.” 또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로 고쳐야 한다.
난데없는 말 트집에 무안을 당한 김대리.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부장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나 보다.
“도대체 오늘은 왜 지각한 거야?”
“차가 막혀서요….”
“차가 막혀?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기왕에 말 트집을 잡기로 작정한 부장이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막히다’는 말은 ‘길이 막히다’라는 경우에나 쓸 수 있는 것이지, 차가 막힐 수는 없다. 차들은 막히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밀리는’ 것이다. 이렇게 자꾸 차들이 밀리게 되면 나중에는 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가 막히다’라는 말은 ‘차들이 밀리다’로 고쳐 쓰거나, 상황이 더욱 심각하면 ‘길이 막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입이 한 자나 튀어나온 김대리가 툴툴거리며 책상 정리를 시작하자, 옆에 있던 이과장이 짐짓 위로하는 척하며 약을 올린다.
“김대리, 삐졌어요? 그냥 한 수 배웠다 생각하고….”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엾은 이과장이 그 희생양을 자청한다.
“삐지다니오? 내가 무를 삐졌나요, 감자를 삐졌나요?”
흔히 무엇인가에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질 때에, ‘삐졌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삐지다’라는 낱말은 ‘칼 따위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히 잘라내다’라는 뜻이지, ‘토라지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인가에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지는 상태는 ‘삐치다’가 맞다. 곧 ‘삐지다’는 “멸치 국물을 우려낼 때에는 무를 삐져 넣으면 한층 맛이 난다.”와 같은 경우에 쓰이는 낱말이고, ‘삐치다’는 “작은 일에도 잘 삐치는 사람은 깊이 사귀기 어렵다.”와 같이 쓰이는 낱말이다.
괜히 거들었다가 말 트집의 공을 넘겨받은 이과장. 아침 내내 그는 잔뜩 삐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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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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