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명부터 성분까지, 줄을 잇는 외국어 행렬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김성아

ryuk67@naver.com


 립스틱 효과는 경제적 불황기임에도 기호품의 판매량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호황기의 소비 태도를 떨치지 못하는 ‘소비자 심리’에서 비롯된다. 가격이 저렴한 사치품을 구매하며 만족감을 느끼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코로나19의 영향에도 화장품 시장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신세계 백화점은 올해 수입 화장품류 매출이 작년 대비 26.6% 증가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달성했다. 씨제이 올리브영은 탄력 관리 화장품의 상반기 매출이 작년 대비 26% 상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장품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누리고 있다’라는 감정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뜻하는 신조어)를 지녔다. 오랜 거리두기로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더없이 좋다. 하지만 화장품이 심리적 만족을 넘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지는 의문이다. 종류와 제품명, 그리고 성분까지 모두 외국어로 표기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외국어의 향연(1) 화장품의 종류, 제품명

 화장품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화장품의 종류는 스킨, 토너, 앰플, 에센스, 세럼, 로션, 에멀젼, 크림, 아이섀도우, 브러쉬, 파운데이션, 쿠션 등이 있는데 모두 외국어인 탓에 이름만 보아선 기능을 파악하기 힘들다. 상품명 또한 영어로 범벅되어 있다. 다음은 2020년 9월 4일 기준, 6년 연속 화장품 관련 1위 애플리케이션 ‘화해’의 크림 부문에서 1위~10위를 차지한 제품들이다. 이렇게 외국어를 사용한 용어는 무슨 뜻인지, 어떤 기능인지 직관적으로 유추하기 어렵다.

 

 순위

 제품

 1

 자작나무 수분 크림

 2

 데일리 모이스쳐 테라피 인텐시브 페이셜 크림

 3

 약콩 영양 크림

 4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크림(px)

 5

 마다가스카르 리얼 수분 크림

 6

 데일리 모이스쳐 테라피 페이셜 크림

 7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수딩 크림

 8

 익스트림 크림

 9

 더 트루 크림

 10

 아토베리어 크림

▲ 자작나무 수분 크림과 약콩 영양 크림 외에는 주요 성분과 기능을 알기 어려운 제품명


 물론 수입 화장품의 이름이 외국어인 것은 당연하다. 책상, 의자와 같은 고유명사여서 한국에서 똑같이 쓰인대도 토를 달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산 화장품인데도 영어 이름을 가진 제품이 많다. 앞서 제시한 크림 부문 1위~10위를 차지한 화장품 중에서 2위, 6위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 회사에서 제조한 것이다.


외국어의 향연(2) 화장품의 성분

 최종 난관은 꼬부랑글자가 날아다니는 성분표시란이다. 어려운 화학제품들을 번역 없이 표기해 놨다. 가령 acid를 산이 아닌 애씨드로, polymer를 중합체, 고분자가 아닌 폴리머로 제시한 식이다. 물론 산, 고분자라 해도 완벽하게 기능을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애씨드나 폴리머보다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또한 성분란을 모두 로마자로 표기해 한국의 소비자들이 읽을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이미 우리말이 있는 것들은 우리말로 쓰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한글로라도 적어 소비자들의 ‘읽을 권리’라도 보장해야 한다.

 최근에는 화장품의 구성성분을 분석해주는 유튜버나 애플리케이션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화장품 성분을 분석해주는 유튜버 ‘디렉터 파이’의 구독자는 85만 명에 달하고, 피부 유형별로 적합한 화장품을 추천해주는 화해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2020년 기준 85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제품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구체적인 성분 분석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꼬부랑글자로 메워진 화장품 뒷면을 일일이 읽어내지 못하지만, 관련된 정보 제공자를 찾으려 노력하는 게 피부에 대한 최소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화장품명 비교하기: 우리말 대 외국어

 화장품 종류, 성분 표기는 외국어가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제품명이 한국어인 화장품은 더러 있다. 앞서 본 ‘자작나무 수분 크림’과 ‘약콩 영양 크림’ 외에도, 화해 어플리케이션의 제품별 랭킹(크림, 에센스, 세럼 랭킹)에는 ‘어린쑥 수분 진정 크림’, ‘서양 송악 진정 크림’, ‘도자기 크림’, ‘맑은 어성초 진정 에센스’, ‘보들보들 결 세럼’, ‘비타C 잡티 세럼’ 등이 포함돼 있다.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크림’과, ‘잡티 이별 세럼’(청귤 비타C 잡티 세럼의 별칭) 중 이해하기 쉬운 것은 무엇인가?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는 빨간 흠집을 없앤다는 의미로 ‘잡티 이별’과 동일하지만, 늘어질 뿐만 아니라 직관적으로 기능을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맑은 어성초 진정 에센스’, ‘어린쑥 수분 진정 크림’은 주성분과 기능을 모두 우리말로 표기하여 이해가 쉽지만, ‘데일리 모이스쳐 테라피 페이셜 크림’은 주성분도 기능도 모호하게 다가온다.


<사진 1> ▲ 우리말 화장품 대 외국말 화장품(1)
잡티 이별 세럼(청귤 비타C 잡티 세럼의 별칭)과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수딩 크림
이미지 출처: 구달 공식 누리집, 닥터자르트 공식 누리집

 

 

<사진 2> ▲ 우리말 화장품 대 외국말 화장품(2)
어성초 진정 에센스, 어린쑥 수분진정 크림과 데일리 모이스쳐 페이셜 크림
이미지 출처: 구달 공식 누리집, 한율 공식 누리집, 피지오겔 공식 누리집

 

 영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용어로 사용된다. 특히 병원에 가면 의사와 간호사가 익숙지 않은 영어단어들을 주고받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인시젼(incision>절개), 벤틸레이터(ventilator>인공호흡기), 트랜스퓨전(transfusion>수혈) 등 모든 의료인이 다음의 영어단어들을 익혔기에 대화에 단절이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전문 의료인들끼리 영어를 쓰는 것은 정보 소외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없다. 환자가 받는 처방이나 수술은 의사와 간호사의 일이지, 환자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는 의료전문단어를 알지 못해도 의료 서비스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화장품의 경우는 다르다. 화장품 처방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소비자들은 상품명, 성분표로 제품의 기능을 스스로 판단해 구매한다. 처방의 주체가 곧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소비자가 자신에게 올바른 처방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약 회사의 직원이 아닌 일반 소비자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하다. 제품명부터 성분까지 줄을 잇는 외국어의 행렬이 빨리 멈춰, 어려움 없이 화장품을 소비하는 시대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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