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39] 김영명 공동대표

 

올해는 장마가 늦다. 본격적인 장마가 올 것 같지도 않다. 이른바 마른 장마로 그치려나? 그러나 오늘은 서울에도 비가 온다. 어제 저녁부터 왔다. 장마철엔 장마철다운 비가 와 주어야 한다. 농작물도 잘 자라고 더위도 식혀준다. 습도가 높아 불쾌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뙤약볕 한여름보다는 낫다. 그래서 한국의 여름은 그나마 견딜 만하다. 7월 한 달 장마가 식혀주고, 아주 더운 날은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어릴 적이 생각난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나기 시작하는 그 무렵, 처마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마당에 작은 홈을 파고 물방울이 톡톡 튀면 저쪽에서 지렁이가 꾸물대고 이쪽에선 달팽이가 엉금거렸다. 그걸 보고 쪼그려 앉은 어린 아이...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엔 우산도 귀한 편이었다. 비옷을 입고 다녔다. 이쁘지 않은 칙칙한 국방색 고무 같은 갑옷. 장화를 신었는데 안에 물이 들어가면 신문지를 넣어서 물을 빼었다. 물 밴 신문지 조각이 발에 닿는 감촉. 나쁘지 않았다.

 

더 자랐을 때도 우산이 지금처럼은 많지 않아 수리하는 행상들이 다니곤 했다. 길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면 500원짜리 파란 비닐 우산을 사서 썼다. 그 비닐 우산 하나가 어쩐 일인지 우리 집에 있길래 기념으로 신발장 안에 모셔 놓았다. 고무신 한 켤레하고... 그러나 언젠가 이사 갈 때나 그 전에 필시 없애버리고야 말겠지.

 

요즘엔 우산이 흔해져서 집안에 너무 많다. 둘 곳이 마땅찮을 정도다. 자식 아이들은 비 온다는 예보가 있어도 우산을 안 들고 나간다. 귀찮다고. 그리고는 밖에서 비가 오면 새 우산을 사 들고 온다. 그래서 쌓인 우산의 숫자가 만만찮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나 보다.

 

내가 좋아하던 어느 여자는 비가 오면 차를 몰고 달리고 싶다고 했다. 제 말로 ‘똘끼’가 있어 그렇단다. 그래도 비가 억수같이 퍼부으면 안 되겠지. 적당히 내리는 빗소리를 창밖으로 들으며 차 앞유리의 빗방울이 쓸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적당한 음악을 틀어놓고 적당한 속도의 운전을 적당히 즐기겠지. 요즘도 그러려나? 아마 아이 키우느라 쉽지는 않을 게다.

 

내 차의 선루프는 별로 쓸모가 없다. 열면 해가 들어와서 덥다. 비가 오면 열 수 없다. 비 오는 날 투명 유리만 닫고 달리면 그나마 운치를 느낄 수 있겠지. 해 보았지만 별로였다. 무엇이든 그날의 기분과 주위 상황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겠지.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사흘 왔으면 좋지.

 

  그래 비야, 한 사흘 와 다오. 홍수 안 질 만큼만 쏟아져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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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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