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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이성과 감성

by 한글문화연대 2014. 7. 18.

[우리 나라 좋은 나라-41] 김영명 공동대표

 

<이성과 감성>. 영국의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처녀작이다. 오스틴은 뒤에 나올 브론테 자매의 선배로서 영국 여류 작가의 계보에서 선두를 장식하는 작가이다. 이런 계보가 이후 <델러웨이 부인>으로 유명해진 버지니아 울프로 이어진다--라고 아는 것도 없는 내가 한 번 얘기해 본다.


이 소설은 오스틴의 전성기 작품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지만, 인간의 뗄 수 없는 두 부분, 즉 이성과 감성의 갈등 또는 그 어울림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소설은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두 자매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이성을 대표하는 언니는 감성에 곧잘 휘둘리는 동생을 돌보며 차분한 생활을 한다. 언니와 그 애인의 사랑은 너무 이성적이어서 상대에 대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도 못하고 헤어질 위기에까지 다다르지만, 마침내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감성이 발로하여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감성을 대표하는 동생은 자기 감정에 도취하여 한 남자에게 열렬한 사랑을 바치지만, 그것이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그 결과 동생은 애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동생은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고 한 단계 성숙하여 자신을 지켜보던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소설은 사랑에는 이성도 감성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이 조화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런데 어디 사랑뿐이랴? 인간사 모든 것이 다 이성과 감성의 뒤범벅이다. 어느 한 쪽에 지나치게 기울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인류 역사도 이성과 감성의 교차로 이루어졌다. 서양을 보면, 그리스 로마는 이성적인 문명을 대표하고 그 이후의 중세는 몽매와 미혹의 감성을 대표한다. 물론 중세가 그렇게 어두운 시대가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어두운 부정적 의미의 감성 시대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뒤에 닥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의 부활을 상징하였다.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강조가 서양 근대 과학과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런 이성 지배가 지나쳐 인간성을 속박한다는 자성이 일어나, 인간 깊숙한 곳의 감성을 되살려내는 낭만주의나 탈근대주의 같은 사조들이 나타났다. 니체나 프로이트 같은 사람은 인간은 결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정이나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고 하였다.


이성과 감성의 갈등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인간 조건이다. 흔히 서양은 이성이 강하고 동양은 감성이 강하다는 말을 하는데, 글쎄 최근 수 백 년 동안 이성에 기초한 서양 문명이 세계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닐까? 동양이 감성이 강하다는 것은 결코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문명이 뒤떨어졌다는 말처럼 들린다.


남자는 이성이 강하고 여자는 감성이 강하다는 말은 사실처럼 보인다. 물론 남자에게 이성과 감성 중 어느 것이 강한지 묻는다면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감성적인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유전생물학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다. 창을 들고 사냥을 나가야 하는 남자는 차가운 계산과 냉정한 집중이 필요하다. 그 반면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여자에게는 아이의 생명을 보장할 따뜻한 감성이 필수적이다. 그런 원시 시대의 유전자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조화는 애당초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것일까? ‘너는 너 나는 나’처럼 이성은 이성, 감성은 감성, 그런 것일까? 이성과 감성이 섞일 수는 없고 어떨 때는 이성이 앞서고 다른 때는 감성이 앞서는 그런 것이 오히려 더 옳은 일일까? 그럴 것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적으로 해야 할 때 감성이 앞서고, 감성이 앞서야 할 때 이성이 이를 붙잡는 일일 것이다.


이러니 참 세상은 오묘하고 인생은 어렵다. 아니 그래서 인생은 오히려 재미있는 것이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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