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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비가 안 온다

by 한글문화연대 2014. 7. 10.

[우리 나라 좋은 나라-40] 김영명 공동대표

 

비가 안 온다. 소나기가 조금 오다가 만다. 남쪽 지방은 태풍이 빗겨가서 피해도 입었다는데, 중부 지방에는 장마철인데도 비가 안 온다. 장마철에는 비가 와 주어야 농작물도 잘 자라고 땅도 비옥해지고 더위도 좀 가실텐데, 걱정이다.


비가 안 오니 날씨가 덥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다.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치는 때가 왔다. 방송에서는 불볕더위니 찜통더위니 하면서 떠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참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 하고 느낀다. 고등학교 다닐 대 광화문에서 버스를 내려 20분 동안 학교로 걸어갔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낑낑대며 가면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안에 속옷을 입고 교복을 입었는데 교실에서 웃옷을 못 벗게 했다. 예의상 맞는 일이기는 하지만, 냉방기는커녕 선풍기도 없는 교실에 빽빽이 들어앉은 콩나물들은 얼마나 더웠겠는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 덥다!” 하면서도 더워서 죽겠다는둥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만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그렇게 추운데도 외투도 못 입게 했다. 그 당시 서울은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다. 내복 하나, 스웨터 등 속옷 하나 그리고 얇은 겨울 교복 하나가 끝이었다. 그래도, 춥다 춥다 하면서 귀를 잡아가면서도 괴로워죽겠다거나 왜 외투를  못 입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일 없이 학교 다녔다. 그리고 안 얼어 죽었다.

 

그 추운 겨울에 어린 학생들에게 외투를 못 입게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른들의 야만스러운 횡포였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생각하면 그래도 우리는 별 탈 없이 동상 안 걸리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으면서 다 살았다.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에 비하면 너무나 약해졌다. 더위도 추위도 못 이겨 난리다. 기온이 30도만 넘으면 더워주겠다고 난리고 영하 10도만 되면 혹한이라고 난리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여 더위와 추위를 없애기 쉬운 환경에서 살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학생 때 그렇게 살던 나도 이미 면역이 약해져서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래도 요새 아이들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한다만....

 

나약해지기야 어디 더위와 추위에서만이겠는가? 옛날보다 부유해진 환경에서 아이를 한둘만 낳다 보니 오냐오냐 키우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아이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가 다 해주고 때로는 아빠도 다 해 준다. 마땅히 제가 할 일도 엄마에게 미룬다.

 

아이들 뿐이랴? 서른 넘은 아들 놈도 엄마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내 아들 말고. 내 아들은 그렇게 키우지 않는다. 많은 아들 놈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헬리콥터 맘인지 뭔지 하늘을 빙빙 돌면서 자식들 일상을 계획하고 감시하고 지휘한다. 아이들은 엄마 말 잘 듣고 엄마 손만 잡고 다니면 된다. 서른 살 아이들도...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옛날 얘기만 하는 나도 이젠 늙었나보다. 옛날에 복사기 없을 땐 어떻게 연구를 했지? 참으로 의문이다. 옛날엔 시계가 없었는데 의전 회의 시간을 어떻게 맞추었지? 참 의문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 사람들 다 연구했고 다 회의했다.

 

요즘 아이들 이렇게 나약해서 앞으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지? 걱정하지 마라. 험난한 세상도 안 험난한 세상도 다 헤쳐 나갈테니.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다만 나약하게 앵앵거리는 그 꼴이 보기 싫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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