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풀어쓰기부터 천지인 자판까지 - 이원철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2. 1. 13.

풀어쓰기부터 천지인 자판까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이원철 기자

idiot0223@naver.com

 

 

한글 타자기의 기원, 풀어쓰기

한반도에 글을 가로로 풀어쓰려는 시도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찾아와 성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왼쪽부터 가로로 글을 쓰는 서양책의 방식대로 한글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아라비아 숫자나 로마자와 어우러지게 써야 하는 성서의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로마자 쓰기 방식의 영향을 받아 구두점, 띄어쓰기와 같은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등을 비롯한 서양 세계는 한반도에서 멀리 있어,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도 글은 일본을 따라 세로로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 결과 세로쓰기에 맞춰 발달한 일본의 활자와 조판, 인쇄 기술에 한글을 덧붙이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일어나 한글 고유의 쓰기 문화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인물들이 한글 운동가들이다. 이들은 한글이 한자보다는 같은 소리글자인 로마자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새 시대의 한글은 한자 문화에서 독립하여 로마자를 쓰듯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로로 쓰고, 띄어 쓰고, 풀어쓰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또한 이들은 가로쓰기와 풀어쓰기를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세로로 모아 쓴 한글을 가로로 고쳐 쓰면서 받침을 아래가 아니라 옆으로 옮겨 적는다면 이미 절반가량 풀어쓴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아 쓴 한글이 네모 안에 부수를 욱여넣는 한자 문화의 잔재라고 보고, 이 속박에서 해방된다면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의 잠재력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글 타자기의 탄생

한글 타자기를 더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풀어쓰기를 주장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일본과 중국의 기계식 타자기는 1,000여 자의 한자를 담아야 했기에 로마자 타자기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속도도 느리고 타자기라기보다는 긴 인쇄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로마자 타자기처럼 빠르고 효율적인 타자기를 만들려면 한글도 풀어쓰기 형식으로 변경하는 편이 유리했으므로, 한글 기계화에 유리하다는 근거를 새롭게 추가할 수 있었다.

위 주장은 한자를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렇기에 이들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로 몰렸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까지도 신문이나 공문서 등에 한자를 섞는 것은 당연시되었고, 풀어쓰기나 한글 타자기를 이용한 가로쓰기 역시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1988한겨레신문이 순한글 가로쓰기로 신문 전체를 편집하고 많은 독자에게 충격을 주며 순한글 가로쓰기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한겨레 신문의 노력은 당시엔 널리 퍼지지 못했지만, 그 정신만은 살아남아 오늘날 컴퓨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글을 다루는 방식이 입력은 풀어쓰기, 출력은 모아쓰기로 정형화되어 풀어쓰듯 글쇠를 누르면 전자회로가 알아서 모아 써주어 그 편리성을 인정받았다. 현대에 한글 전용 자판과 가로쓰기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그 이전의 신문을 본다면 일제강점기 시대의 신문이나 별다를 바 없는 고문서처럼 느껴질 것이다.

 

휴대전화의 자판, 천지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가 컴퓨터의 시대로 한글전용 자판의 시대라면 2010년도는 휴대전화의 시대였다. 초기 휴대전화의 자판은 스마트폰과 달리 총 12개로, 한글의 모든 자음과 모음을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처음 나온 자판이 나랏글 자판이다. 기본 자음과 기본 모음을 지정한 후 획 추가와 쌍자음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자판을 추가로 만들어 모든 자음과 모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에 한글 자판 삽입을 성공한 나랏글 자판이지만 사실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나랏글 자판은 획 추가 자판을 자주 눌러야 해서 손가락이 쉽게 피로해졌다. 또한 획 추가를 통한 자모음 조합은 직관성이 떨어져 초심자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었다. 문자로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한 이모티콘을 이용한 의사소통이 활발해진 시대에 이모티콘 활용이 다소 불편하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이를 보완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자판이 천지인 자판이다. 천지인 자판은 한글 창제 당시 모음 구성 원리인 하늘, , 사람 세 가지 요소를 응용하여 다양한 모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였다. 자음도 비슷한 자음끼리 묶어 연타를 통해 자음에 획이 추가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와 같이 사용 방식이 직관적이라 나랏글 자판과 달리 처음 익히기에 쉽고 획 추가나 쌍자음 자판을 누르는 수고가 없어 한 손으로도 입력할 수 있게 되었다. 타수가 많아지는 등의 단점도 분명 있지만, 한글의 창제 원리를 보기 쉽게 자판에 응용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과 우수성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스마트폰이 주류가 된 시대에서는 천지인 자판도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12개의 한정된 자판에서 벗어나면서 컴퓨터 자판과 같은 쿼티 자판이 더 익숙하고 편리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물론 더 편하고 유용한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한글의 구성 원리를 살린 천지인 자판이 비주류가 되어가는 일은 아쉬울 따름이다. 한 번쯤 우리 자판의 역사를 돌아보며 선조의 지혜와 한글 운동가들의 노력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료 1. 왼쪽은 천지인 자판, 오른쪽은 나랏글 자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