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단일 언어에 익히기 쉬운 글자 한글을 사용하다 보니 편하게 사는 걸 모르고 허황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 여러모로 억울하다는 열패감에 빠져 어떻게든 영어로 사회 발전의 길을 터보겠다는 야심을 지닌 자들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다민족 다언어 사회와 비교해 우리의 말글살이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인지 모르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경쟁력’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재려 한다.
1990년대 말에 영어를 공용어로 정하자는 주장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을 영어상용도시로 만들어 ‘글로벌 허브 도시’로 우뚝 세우겠다고 한다.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발상인데, 그러면 지금까지 한국은 어떤 경쟁력으로 여기까지 왔단 말일까?
‘상용’이란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으로서,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의 주요 민족인 ‘앵글로-색슨’에 대해 사전에서는 ‘영어를 상용하는 국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상 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 공공기관에서든 영어를 늘 사용하는 것이 바로 상용이다. 한국은 ‘한국어를 상용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부산을 ‘일상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니….
부산시는 단어의 개념조차 잘못 이해하고 있다. “시의 영어 상용화 정책은 영어를 의무적으로 쓰는 공용화가 아니라 영어를 많은 시민이 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넓히는 방향”이라고 부산시는 설명한다. 공용은 의무이고, 상용은 의무 아니니 겁먹지 말라는 투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심각한 착각이다. 공용어란 ‘한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인데, 이 공용어 사용의 ‘의무’는 공공기관에 부과되는 것이지 결코 시민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공공기관에서는 국민이 공적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보장하고 공적 업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도록 공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처럼 공용어가 한국어 하나인 나라에서는 공공기관에서 한국어를 써야지 외국어를 쓰면 안 된다.
싱가포르처럼 공용어가 4개인 다민족 다언어 국가에서는 공공기관에서 네 개의 공용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 어떤 말을 쓰는 국민이든 공적 정보를 얻고 공적 용무를 처리할 수 있게끔 보장한다. 싱가포르의 공용어가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네 가지라고 해서 거기 국민들이 네 개의 언어를 모두 사용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게 결코 아니다. 공용어 사용의 의무는 공공기관에서 지는 것이다.
공용어 사용 의무에 대한 오해도 그렇지만, 부산시의 생각과 달리 ‘공용어’보다도 ‘상용어’가 시민에게 더 강압적이고 의무적일 수 있다. 정책 당국자의 정책 의도가 개입되어 강제적으로 추진될 때 그렇다.
1910년 강점 뒤 일제는 조선 땅에서 모든 행정 문서와 법률 문서, 조선어과목을 제외한 교과서를 일본어로 작성했다. 공직 관리들에게 업무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의무였다. 부산시 용법대로 하면, 이게 바로 ‘일본어 공용’이다.
그러다 일제는 1938년부터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전쟁 동원을 위해 일본어 교육을 대단히 강화하고, 1942년부터는 ‘일본어 상용’을 민간의 운동으로 펼치는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식민지의 국어는 일본어였으니, 이를 ‘국어상용운동’이라고 불렀다.
모든 조선어교육은 폐지되고 관공서는 물론이요 학교와 거리, 가정에서조차 일본어를 쓰도록 했다. 조선어를 쓰면 벌금을 물리고 가족 간에도 신고를 장려했다.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친 이 시기가 바로 ‘일본어 상용’ 시대이니, 공용보다도 상용이 더 폭력적이고 전면적이었던 것이다.
부산시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하려 애쓰면서 이런 정책을 내놓은 속내는 짐작이 간다. 시민들이 늘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외국인 손님맞이에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여기가 정말 국제적인 도시라고 어깨에 힘을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이야말로 모기 잡으려고 아파트 불지르는 꼴이다. 일제의 총칼로도 쉽지 않았던 것이 외국어를 상용하게 하는 일이었다. 일제 36년으로도 모자랐으니, 싱가포르처럼 100년은 넘게 식민지 생활을 해야 가능해질 일이리라. 부산시가 원하는 게 이런 강압적인 영어상용인가?
필자가 보기엔, 일반 시민의 영어 능력을 잣대로 국제 도시인지 어떤지 도시 수준을 평가하려는 발상부터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보고 싶은 게 한국어 쓰는 한국인들의 문화이지, 어설프게 영어로 대접하려 안간힘 쓰는 안쓰러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만일 부산시의 ‘영어상용’이 영어 잘하는 시민들 좀 늘리자는 정책이라면 ‘상용’과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부터 버려야 한다. ‘영어 잘하는 시민 늘리기’ 정책으로 이름을 바꾸되, 다른 지자체에서 이미 실패로 끝난 영어마을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예산을 낭비해선 안 된다. 철저히 학생과 시민의 자발적 수요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또한 강제로 영어를 상용하게 할 게 아니라면, 전국에서 가장 영어남용이 심한 부산시의 공공언어 사용 풍토부터 고쳐야 한다. 마린시티, 에코델타시티, 문탠로드 등 지역 이름을 영어로 짓는 도시는 부산밖에 없다. 물론 부산시민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저지른 일이지만.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정책 이름과 행사 이름, 공공시설 이름, 공문서 용어에 영어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곳도 부산시청이다. 이런 곳에서 ‘영어상용’을 외치니, 이는 시민의 알 권리 침해이고, 우리말글 억압이며, 한류 죽이기 정책으로 치달을 것이 뻔하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의도는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자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맞닿아 있는 ‘언어 인권 의식’이다.
한문시대, 국한문혼용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한글전용 시대,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시대이다. 그 한글과 단일언어 한국어로 소통이 너무도 편했던 우리 사회에 박 시장이 불통과 차별의 높은 벽을 세우고 있다. 쓸 일이 있어서 영어 공부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꼭 필요한 사정이 아님에도 우리 일상 생활에 영어를 들여오려는 이상한 노력들이다. 영어상용도시 부산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망 아래 부산시민들은 한글날을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다.
이 글은 <주간한국>에도 실렸습니다.
http://week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707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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