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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말 비빔밥(이건범)

입장과 주장, 입장과 처지

by 한글문화연대 2023. 1. 20.

‘입장(立場)’은 일본 한자어라고 해서 쓰지 말아햐 할 말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여러 선생님의 글이나 책에서 읽었고, 어릴 적에 일본어 공부할 때 이 단어가 나오는 걸 보면서 아, 이 말이 일본어에서 온 거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 한자어 가운데 거의 80% 넘게는 일본 한자어일 것이다. 그런 말 가운데 우리 토박이말이 있거나 우리 한자어가 있다면 그런 말을 쓰자는 게 국어운동 쪽의 오래된 전통인데, 나도 그런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처지’라는 말로 ‘입장’ 대신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입장’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뜻이 풀이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는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이라고 풀이된 ‘처지’로 순화하여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우리가 쓰는 ‘입장’이 ‘처지’라는 뜻일 때도 있지만 내 느낌에 70% 이상은 ‘주장,’이나 ‘의견’의 의미로 사용된다. 의견보다는 조금 더 강하고 주장보다는 약간 덜 공세적인 생각을 표현할 때 보통 ‘입장’이라고 한다. 일본어에서도 이런 뜻으로 사용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따라서 ‘입장’을 무조건 ‘처지’라고 바꾸어 쓰자고 할 일은 아니리라. ‘주장’보다는 강도가 약하고 ‘의견’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자기 생각을 밝히려고 할 때 우리는 ‘입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 ‘입장’ 대신 쓸 말이 바로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쓰거나 새말을 만들어야 할 일이다. 요즘은 ‘입장문’이라는 용어까지 널리 퍼진지라 굳이 새말을 만들어야 하나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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