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람들과 전화로 옥신각신한 적이 있다. 그 기관에서 연행사 제목이 ‘배리어프리 플레이 그라운드’였던가 그랬다. 우연히 이 광고문을 보았는데, 솔직히 나로선 무슨 뜻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의미를 물어본 뒤 꼭 이렇게 영어로 행사 이름을 지어야했냐고 따졌다. 실무 담당자는 자신이 정한 이름이 아닌지라 난감해하는 목소리였다.
곧 이 기관에 공문을 보내 이런 외국어 남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왜 그렇게 사용했는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어떻게든 자기네의 용어 사용에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변명뿐이었다. 시각장애인인 내가 작성했던 다소 격앙된 전체 질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2019년 10월 25~26일에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 페스티벌’이라는 제목의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 행사는 우리 국민 누가 보더라도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고, 외국 장애인을 상대로 벌인 행사도 아닌 것으로 압니다.
1) 국어기본법 제14조 1항에서는 공문서를 작성할 때 공공기관 등은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을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국고를 지원받아 치른 행사에서 이런 식으로 외국어를 남용하여 외국어 능력이 낮은 장애인의 알 권리를 짓밟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이 행사 이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첫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본 행사의 이름인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문화예술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기획한 행사입니다. '외국어 능력이 낮은 장애인'이라는 관점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행사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장애인의 알 권리를 차별하려는 의도는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본 행사에서는 장애인 및 고령자 등 다양한 관람객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큰 활자, 수어통역, 음성 해설, 휠체어 접근 등의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하였습니다.”
물론 차별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런 반응은 접근성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일까? 장애인의 접근성, 아니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의 ’접근성‘까지 고려한다면 그것은 몸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 이전에 말과 글로 알리고 설명하였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접근성이 먼저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이 일단 장벽일 텐데, 그런 언어 장벽을 세워두고 접근성을 말한다는 건 접근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반증 아닐까?
둘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다. “본 행사명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며 대체 표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배리어프리] 라는 단어가 '장벽 제거 또는 완화'로 표기될 수 있지만, 장애인•비장애인을 떠나 사회적 약자의 사회 참여를 도모하는 의미로 한글 표기보다 사회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예술경험을 통해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낮추고자 한 행사 의도와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진짜로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을까? 이들의 이런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한글문화연대에서 2020년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배리어프리‘라는 말의 국민 평균이해도는 18%, 70세 이상 평균 이해도는 4%에 불과하다. 심지어 나는 장애인문화예술원 외에도 장애인인권재단에서 대학교수들을 동원하여 라디오 광고를 하며 ‘배리어프리’라는 말을 홍보하는 것까지 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장애인은 물론이요, 비장애인들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니 예산을 들여 계속 홍보할 밖에. 해당 분야 학자나 전문가들이 자기들끼리 자주 사용하는 말인지라 사회적으로 널리 쓰인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리라.
나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직원들이 질문의 핵심을 피하여 그 언저리를 붙잡고 답하는 걸 볼 때마다 이들의 국어 능력이 뛰어난 것일까 처지는 것일까 혼란스럽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참 드물다. 이들의 의식은 왜 이렇게 흘러갈까? 난 두 가지 추정을 했다. 첫째, 본인이 장애인이 아니고 장애인 단체에서 실무를 맡아보는 사람이기에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둘째, 본인이 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이라는 피해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이를 덮어버리기 위해 애써 영어를 써서 비장애인처럼 보이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지 어떤지 사실 여부는 나도 모르겠지만.
과연 ‘장벽 없는 세상’을 향한 장애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소망은 ‘배리어프리’라는 말로밖에는 설명되거나 가리켜질 수 없는 것이었을까? 나는 중고교 시절에 영어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던지라 어느 정도 어휘는 기억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평소에 영어로 말하고 글을 쓰고 들을 기회가 별로 없으니 기억나지 않는 단어들이 이제는 많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대체로 그렇지 않겠는가?
장애 당사자로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비행기로 부산에 가려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는데 길이 막혀서 좀 늦었다. 허겁지겁 표를 받은 뒤 항공사 직원에게 내가 비행기 타러 가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곧 이 분이 무전기로 직원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런 말이 들려왔다. “블라인드 하나. 블라인드 하나.” 순간, 저 말이 나를 가리키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왜 평범하게 ‘시각장애 한 사람’, ‘시각장애인 한 분’ 정도로 불리지 못하고 무슨 암호 코드처럼 ‘블라인드’로 지칭되어 단위마저 ‘하나’로 세어져야 할까? 아무에게도 부여하지 않는 이런 지칭은 나를 이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 자리에서 배제한다는 느낌으로 몰아갔고, 세상 사람들 앞에 홀로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부끄러움 같은 걸 의식하게 했었다. 사실 나는 굉장히 뻔뻔한 편인데도 말이다. 내가 우리 주변에서 사용하는 우리말로 불리지 않는다는 건 내가 이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의 존엄은 평등하지만 세상이 평등하지 않듯이, 언어능력은 타고난다고 하지만 그렇게 타고나지 못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시각, 청각, 인지 등 여러 분야의 장애가 선천적으로 또는 질병과 사고 때문에 생겨서. 물론 가정과 사회의 돌봄이 없거나 부족하여 그리되는 경우도 있다. 제나라 말이 그럴진대, 외국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경향적으로 장애인들에게는 새로운 정보, 특히 학습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터득하는 데에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외국어 학습에서도 당연히 이런 장애물이 있다. 외국어 사용 환경에 접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다. 어떤 어휘는 외국의 사회 제도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라 그런 장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내가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를 활용하면서 처음 만났던 암초가 바로 ‘바우처’라는 말이었다. 이 제도를 설명해주는 사회복지사가 바우처 어쩌고 하는데,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이게 뭐, 복잡한 제도인가 뭔가... 사실, 바우처는 ‘이용권’ 정도로 간단명료하게 번역하여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 분야와 복지 분야 등에서 전문가들이 거르지 않고 그냥 바우처라고 쓰다 보니 지금은 농식품바우처까지 나오고 있다. 농식품바우처는 생활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제공되는 것인데, 이를 ‘농식품이용권’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쉽고 이해가 빠르겠는가? 공무원들은 민원인에게 두세 번 설명해줘야 하고, 이용자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말이면서도 알아듣는 것처럼 모래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야 하니, 참으로 자존감 무너지는 상황이다.
말은 그저 무미건조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사회적 관계가 그 말을 매개로 작동하면서 차별과 배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언어 능력의 면에서 어떻게든 소외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끌어안으려는 공동체 의식,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첫걸음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쓰는 태도이다.
* 이 글은 한국어문기자협회 <말과글> 172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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