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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친구에 대하여

by 한글문화연대 2014. 10. 16.

[우리 나라 좋은 나라-51] 김영명 공동대표

 

어릴 적부터, 친구는 어릴 적 친구가 최고다, 불알친구가 진짜 친구다, 유식한 말로 이를 죽마고우라고 한다 등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사귀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이해 관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도 짝으로 들었다. 그렇게 믿었다. 옳든 그르든 그런 세뇌 속에서 살았다.

 

학교 “동무”에서 친구로 바뀌는 세월을 살아왔는데, 정말 옛날에는 이해 관계 그런 거 모르고 친하게 사귀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에게 친구가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런지 한 번 아니 두 번 아니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친구에게 살갑게 굴고 자주 연락하고 내 것 네 것 구별하지 않는 불알친구의 성정이 좀 부족한 것도 같다. 학교 다닐 때부터 이른바 친구 관리를 좀 하지 않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친구도 못 사귀는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까닭은 아닌 것 같다. 이른바 불알친구들이 만나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노는 거다. 어릴 때는 다망구 하고 놀고, 중고등학교 때는 “땡땡이치며” 놀고, 대학교 때는 술 마시며 놀고, 젊은 사회 생활 때도 술 마시고 노는 거다. 다르게 노는 것도 많겠지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놀이를 거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 내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기 아니면 대학 동기들이었는데, 만나서 토론도 하고는 했지만 진짜 친한 친구들하고는 그런 하찮은 짓을 하지 않고 그냥 놀았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 사귄 친구들도 같이 노는 친구들이었다. 학문을 토론하고 인생을 논하고 어쩌고는 친구 아닌 사람들하고 하는 거지 친한 친구들 하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만 그런가?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 어느새 친구들이 없어졌다. 까닭은 간단하다. 이제 그렇게 놀 기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젊은 시절의 친구들은 술 친구들이었는데, 이제 반주하는 것 빼고는 술을 안 마시니 친구들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어쩌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취향과 생활이 달라서 재미 없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잘 만나지지 않는다. 피차 마찬가지다. 사적인 친구를 대신하게 된 것이 동창 모임과 동호회 취미 모임이다. 중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가면 잘 모르는 아이(?)라도 아는 척 반말하고, 아는 아이를 만나면 진짜로 반가워서 좋아한다. 취미 모임에서는 내밀한 대화는 못해도 취미가 같으니 대화가 잘 통한다.

 

자주 만나는 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하지만 곧 이어 경조사에 와 주고 내가 병원에 입원하면 문병 와 줄 사람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꼭 죽마고우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친구에 관한 인터넷 댓글들을 보니 친구 그까짓 것 필요 없다, 있어 봤자 돈 빌려달라는 놈들뿐이다라는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글쎄 너무 각박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일리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내게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하자. 정말 죽마고우나 불알친구에게 털어놓게 되고 그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에게 고민거리를 더 잘 털어놓을 수도 있다. 내 민낯을 드러내기 덜 부끄러울 수도 있다.

 

죽마고우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죽마고우 아니라도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재미있게 같이 놀 수 있다. 어릴 적 친구는 나이 들어 이미 취향과 취미가 달라져서 어울리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불알친구의 신화를 깨자! 이를 대신할 것은 보편적 인간애이다. 잘 모르는 사람도 선의로 대하는 보편적인 도덕 말이다. 말을 하다 보니 내가 싫어하는 점잖은 투로 결론을 내리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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