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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우리 집은 가온마을 1단지야”, 세종시의 순우리말 아파트 - 김은수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11. 27.

“우리 집은 가온마을 1단지야”, 세종시의 순우리말 아파트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김은수

5uzuran@ewhain.net

점점 길어지는 아파트 이름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모습을 종종 마주합니다. 건설사 이름 앞뒤로 ‘리버뷰’, ‘센트럴파크’ 등의 ‘펫 네임(Pet Name)’을 덧붙여 이름을 짓기 때문입니다. 펫 네임이란 아파트 주변 입지, 자연환경 등의 특징을 살려 아파트 이름에 덧붙이는 애칭을 뜻합니다. 애칭을 사용하면 우리 아파트만의 차별점과 고유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수요층에게 아파트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 현대건설의 ‘디 에이치’, 포스코건설의 ‘오티에르’ 등 각 건설사마다 기존 아파트와 차별화된 고급화 상표를 만들어 냄에 따라, 동네의 아파트 이름을 제대로 외우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 세종특별자치시의 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아파트 벽면에는 ‘가온마을’이라고 크게 적혀 있습니다. 이 아파트의 정식 명칭은 ‘가온4단지e편한세상푸르지오’이지만, 건설사 이름은 모두 제외하고 순우리말인 ‘가온’이라는 이름만을 살려 벽면에 표기했습니다. 세종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명칭 전용 도시’로, 2011년부터 한글 지역명, 도로명 등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이었던 최민호 현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세종시의 주요 시설 명칭을 순우리말로 제정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글문화연대의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종시의 다른 아파트 단지들은 어떨까요? 모두 ‘한뜰마을’, ‘새뜸마을’, ‘범지기마을’ 등 가온마을과 같이 순우리말 이름만을 아파트 벽면에 표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건설사 이름이 포함된 정식 명칭이 쓰여 있지만, 지역 주민들은 거리를 지나다니며 아파트 벽면의 이름을 보고 아파트를 구분하기 때문에 대부분 ‘XX마을 X단지’라는 명칭에 더욱 익숙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 아파트 이름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영어 단어로 된 애칭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엇을 아파트의 강점으로 두는지가 명확히 보이는 영어 단어(파크뷰, 에듀타운 등)에서 더 나아가 독일어 하임(heim·집), 프랑스어 블랑(blanc·하얀) 등과 같이 한에 이해하기 어려운 애칭을 사용한 아파트 단지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러나 세종시에서는 마을이 범이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범지기’, 냇가에 있는 성이라는 의미의 ‘나릿재’ 등 한글 이름으로 애칭을 만들어 애칭이라는 장점은 살린 채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주민들이 아파트 이름의 의미를 찾아보며 순우리말을 한층 더 가까이 느 수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파트에는 각각 건설사 이름이 붙는데, 현대건설은 ‘힐스테이트’, GS건설은 ‘자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세종시 가온마을 4단지의 정식 명칭인 ‘e편한세상푸르지오’처럼 두 건설사의 이름을 써서 협력했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설사 이름으로 동네 아파트가 불리는 것은 큰 문제를 유발합니다. 동네 주민들 간에 ‘아파트 차별’이 생기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공공분양을 의미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같은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못사는 애’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건설사 이름을 모두 빼고 고유한 이름만을 아파트 벽면에 표기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민간 임대 아파트, 행복 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아파트 단지가 존재하지만, 모두 XX마을, OO마을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1단지, 2단지처럼 단지 숫로만 구분하게 됩니다. 아파트의 배경 정보를 모르는 상태로 순우리말 아파트 이름을 접한다면 그 아파트 주민이 임대 아파트에 사는지, 무슨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에 사는지 알 수 없겠죠. 자연스럽게 아이들 사이에서 아파트 이름으로 따돌리는 경우도 줄어드는 효과도 생깁니다.

세종시 말고도 순우리말 아파트 이름을 채택했던 도시가 있습니다.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가 이에 해당합니다. ‘샛별마을’, ‘느티마을’(분당), ‘숲속마을’, ‘하늘마을’(일산) 등 순우리말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아파트 이름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순우리말 아파트 상표를 사용하는 건설사도 존재합니다. 금호건설은 2003년부터 입주민들이 자연, 이웃 등과 조화를 이루길 바란다는 의미로 ‘어울림’을 사용했습니다. 이밖에 한화건설의 ‘꿈에그린’과 부영그룹의 ‘사랑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사랑으로’라는 명칭에 대해 “한글 브랜드는 읽기도 쉽고 뜻을 알기도 쉬워 남녀노소 누구나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급화를 내세워 어려운 외국어 애칭이나 건설사 이름을 사용하여 아파트 이름을 짓는 것보다는 우리말을 사용한 아름다운 주거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아파트 이름을 외우기 어려워하는 노년층, 아파트 이름 때문에 따돌림당하는 청소년 계층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순우리말로 아파트 이름을 지은 세종시처럼 말입니다. 아파트는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거나 계급을 나누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한 공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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