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글문화연대 회원이자 한글철학연구소장 김영환님의 허락을 구해 올린 글입니다.
‘동’ 이름에 굳이 외국어를 써야 할까
부산 강서구에 2016년부터 친환경 물가 도시를 표방한 ‘에코델타시티’가 조성되고 있다. 강서구 강동동·명지동·대저2동 일대 인구 8만명 규모의 신도시다. 강서구청은 지난해 12월 ‘에코델타동’이란 법정 동명을 새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영어식 법정 동명은 유례가 없었기에 이 이름을 두고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부산시에서 행정안전부로 갔던 서류가 부산시로 돌아와서 이제 강서구 주민들의 여론에 기대어 영어 행정동 이름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동네 이름은 우리가 정한다며 입주 예정자들을 중심으로 찬성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에 외래어 배척은 퇴행적인 인식이라는 주장이다.
동 이름, 땅 이름은 입주 예정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동 이름, 땅 이름은 천 년을 갈 수도 있다. 앞으로 그 동네로 이사 올 사람과 미래 세대도 생각해야 한다. 이름은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성격을 갖는다. 입주 예정자들이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이런 여론이 형성된 과정이 문제인데, 이른바 ‘글로벌’ 시대라는 통념이 번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화, 세계화’ 추진은 좋으나 그것이 영어 남용으로 연결될 이유는 없다. 이런 영어 남용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을 낳은 적도 있다. 우리말과 글을 스스로 얕잡아 보는 게 왕조시대부터 우리 지식인의 오랜 병폐였다.
8세기부터 시작된 우리 땅 이름의 한자화는 1000년을 넘게 계속되었다. 무너미→수유리, 누루미→황산, 아우내→병천, 돌개→석포처럼 정겨운 토박이말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고 우리 스스로 민중의 이름을 낯설게 느끼게 되었다. 부산 강서구 ‘명지’도 본디 ‘울다’라는 뜻과 연관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기록에 따르면 큰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우는 소리를 낸다는 데서 땅 이름이 유래하였고, 지명학회 부회장 이근열에 따르면 우는 마을이란 뜻의 ‘울말’이 아직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한자식 땅 이름이 있는데, 영어식이 생긴들 무슨 문제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빠지면, 해묵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다.
에코델타란 환경 생태를 뜻하는 ‘에코(eco)’와 삼각주를 뜻하는 ‘델타(delta)’를 합친 이름이다. 생태학을 뜻하는 영어 ‘ecology’는 독일 생물학자 헤켈이 1869년에 처음으로 쓴 용어를 영어로 바꾼 것이다. 영어에서 경제를 뜻하는 ‘eco-nomy’와 뿌리가 같다. 이 두 낱말은 집, 살림살이를 뜻하는 그리스말 oikos에 뿌리를 두고 있다. eco가 친환경적이란 뜻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델타 또한 그리스 알파벳 가운데 네 번째 글자의 이름이다. 수를 적을 때는 4를 나타냈다. 그리스 알파벳에서 델타의 꼴이 세모이기 때문에 삼각주, 선상지를 가리키게 되었다. 본디 이집트와 시나이에서 문을 본뜬 모양의 글자였다가 그리스에서 세모꼴이 되었다. 수학에서는 미세한 변화량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에코델타에서 친환경적인 물가도시, 미래 도시의 뜻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본디 고유명사와 그 속성들의 연결관계는 매우 우연적이다.
‘울말동’이란 토박이말 이름도 그런 지역 특성을 넉넉히 담아낼 수 있다. 특히 에코델타란 이름에 거리감을 느낄 노년층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주민 선호도 조사에서 2위를 했던, 강의 순우리말인 ‘가람’을 동 이름으로 쓰는 것도 바람직하다.
도시 이름을 영어로 짓는다고 자산 가치가 올라가는 게 아니듯이 우리말로 짓는다고 내려가지도 않는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땅 이름의 일반적 성격에 비추어 에코델타동은 ‘울말’이나 ‘가람동’으로 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출처: 경향신문( [기고]‘동’ 이름에 굳이 외국어를 써야 할까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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