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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12기] ‘보는 전시’를 넘어: ‘공간 오감’의 전시로 다시 묻는 문화의 감상 - 기자단 12기 홍예슬

by 한글문화연대 2025. 7. 21.

보는 전시를 넘어: ‘공간 오감의 전시로 다시 묻는 문화의 감상

 

한글문화연대 12기 대학생 기자단 홍예슬

 

눈으로만 보세요.” “만지지 마세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붙여진 이 문장은, 관람의 기본이 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눈으로 문화를 볼 수 없는 사람에게 감상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문화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감각을 비워두고 있었는지, 문득 생각하게 된다. 감상이 눈에만 머물러 있는 지금의 방식은, 누군가에겐 그 자체로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공간 오감>의 점자 안내판 문화체육관광부

 

점자, 손끝으로 이어진 한글의 정신

그런 의미에서,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세종대왕이 누구나 쉽게 익히도록 만든 훈민정음은 문자 자체를 넘어 접근성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 정신은 오늘날 점자에도 이어진다. 점자는 손끝으로 읽는 한글이자, 보이지 않아도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언어다. 글자가 없어 듣고만 있던 옛 백성이 소리를 문자로 옮겨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듯, 시각 정보를 가질 수 없는 이들도 손끝의 글자를 통해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점자 감상의 한계와 공간 오감이 보여준 가능성

하지만 정보를 알 수 있는 것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전시장에서 점자 해설이 제공되어도, 그 설명만으로 충분한 감상이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틈새에 있다. 감상은 단순히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문화가 모두에게 닿기 위해서는, 읽는 방식뿐 아니라, 느끼는 방식까지 열려 있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공간 오감은 이러한 점자 감상의 가능성을 한층 더 확장한다. 이 전시는 점자만이 아니라, 촉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감상 방식을 통해 보지 않고도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안한다. 점자는 한글이 미처 닿지 못했던 곳을 메우는 언어이고, ‘공간 오감은 그 언어가 감상의 도구로도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전시실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1층의 공··각 전시 학습 공간인 공간 오감에서 진행된다. ‘공간 오감 시각장애인이 직접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마련된 공간이다. 현재 여기, 우리, 반가사유상을 주제로 한 체험 전시가 운영되고 있으며, 관람객은 공간 오감에서 모형으로 만든 다양한 반가사유상을 직접 만지고, 소리와 향기를 통해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교육관에서 나와 국립중앙박물관 2층으로 향하면 실제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사유의 방>이 있다. 이곳에서 체험 전시를 통해 만난 반가사유상을 실제로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공간 오감’: 오감으로 재구성한 관람 방식

전시의 시작은 청각이다.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전시에서, 비시각장애인은 시각 차단 경을 착용한 채 해설사와 음성 안내를 따라간다. 청각을 열었다면, 다음은 촉각이다. 6세기와 7세기의 반가사유상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전체적인 외형을 느껴본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던 곡선과 표면의 감각이 손을 통해 전달된다. 이어지는 구성에서는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함께 경험한다. 금속과 흙, 돌 등 재료의 질감 차이를 손으로 만지며, 조형 과정을 느껴본다.

 

그다음은 후각이다. 이 공간에서는 향으로 반가사유상을 감상한다. 시대별 반가사유상을 상징하는 향이 그릇에 담겨 제공되며, 관람자는 이를 맡아보며 작품이 지닌 분위기 차이를 느낀다. 이제 다시 청각으로 반가사유상을 감상한다. 반가사유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각 조각상의 형상을 소리로 풀어낸 음악이 흘러나온다. 눈앞에 펼쳐진 형상이 아니더라도, 음을 통해 형상에 다가가 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실제 크기와 같게 만든 반가사유상을 만난다. 늘 보기만 하던 대상이 손에 닿을 때,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요소들에 주목하게 된다. 왜 이 부분은 이렇게 생겼을까, 어떤 마음으로 조각했을까. 감상이 비로소 사유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점자 패드 체험과 소감 나누기로 마무리된다. 점자 패드 위에 손으로 오늘의 감상을 그려보고, 각자 느낀 감각의 차이를 말로 나눈다. 눈이 아닌 오감으로 감상한 문화유산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공간 오감> 교육 현장 국립중앙박물관

 

공간 오감에서의 전시가 확장한 문화 감상의 새 지평

문화는 감상하는 방법도, 감상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공간 오감에서의 전시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에 머물지 않는다. 이 전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전시 감상의 형태를 되묻고. 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을 제시한다. 작품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사물만이 아니다. 그것을 느끼는 방법이 곧 작품의 일부가 된다면, 전시장의 공간은 더는 일방적 설명의 장소가 아니라, 감각이 머무는 장소로 확장될 수 있다. 누구든 자신의 감각으로 작품을 만나고, 기억하며, 떠올릴 수 있다면, 감상은 훨씬 더 깊어질 것이다. 시각 중심의 틀을 넘는 시도와 실험이 더 많아질수록, 우리는 비로소 문화가 보이는것이 아니라 닿는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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