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의 대상은 “어려운 말”
“모두에게 쉬운 말”을 위한 시도
조서현 기자 s3ohyuncho@gmail.com

국립국어원(이하 국어원)이 국어 순화 사업의 일환으로 제시하는 순화어 ‘다듬은 말’은 온라인에서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된다. 이를 두고 “뻘짓”, “억지”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다듬은 말을 둘러싼 비판이 단순한 조롱만은 아니다. ‘누리터 쪽그림’처럼 기존 표현인 ‘웹툰’보다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이미 널리 정착한 언어를 ‘굳이’ 바꾸려 한다는 반발도 있다. 이러한 비판 가운데 국어 순화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어 지우기’에서 ‘쉬운 말 만들기’로
국어 순화 운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어 잔재를 없애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해방 이후 정부는 국어정화위원회 등을 설치해 우리말을 정비하고 언어 주권을 회복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영어를 비롯한 서구권 외래어 사용이 늘어나면서 국어 순화의 방향도 바뀌었다. 정부는 국어순화운동협의회를 중심으로 순화 정책을 체계화했고, 일본어 잔재를 없애는 데서 나아가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오늘날 국어원이 추진하는 국어 순화 사업도 이러한 흐름을 잇고 있다. 언론계·학계·청년 등이 모인 새말모임이 제시하고 국어심의회 심의를 거쳐 선정되는 ‘다듬은 말’ 역시 순우리말을 고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더 쉬운 표현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성공한 순화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긍정적인 반응을 찾기 쉽지 않은 걸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성공한 순화어를 순화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댓글’이다. 인터넷 도입 초창기에는 영어 ‘리플(reply)’이라는 표현이 지배적이었으나, 순화어인 ‘댓글’이 등장한 후 빠르게 대체됐다. 오늘날 ‘댓글’을 순화어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있던 말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동아리’, ‘덮밥’, ‘갓길’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도시락’은 일본어 ‘벤또’를 대체하기 위해 이미 사라진 단어를 다시 가져온 사례인데도 정착에 성공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성공한 순화어의 공통점으로 ‘길이’를 꼽았다. ‘리플→댓글’, ‘인터체인지→나들목’처럼 성공 사례는 대부분 원래 단어보다 짧거나 길이가 비슷했다는 것이다. 반면 ‘웹툰→누리터 쪽그림’, ‘돈가스→돼지고기 너비 튀김’처럼 길어진 표현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airplane’은 ‘비행기’라는 번역어로 자연스럽게 정착했지만, ‘helicopter’는 외래어인 ‘헬리콥터’가 널리 쓰이고 있다. 이는 모든 외국어가 반드시 순화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모두에게 쉬운 말”을 위해서
허재영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는 “어떤 언어도 100% 고유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며 억지 순화의 한계를 인정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언어는 계속 변화를 거쳐 왔기 때문에 외국어 표현이나 전문용어에 대해 무조건 적대적일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부 순화어는 “쉬운 말”이라는 취지와 달리 오히려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웹툰’을 다듬은 말 ‘누리터 쪽그림’처럼 직관성이 없는 표현은 정착에 실패했고, 이러한 사례는 국어 순화가 ‘억지 번역’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다만 허재영 교수는 동시에 “국어 순화는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낯설거나 어려운 말이 늘어날 경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슬옹 원장은 “우리나라는 순화 과정에서 일부 폐쇄적 민족주의 경향이 없지 않았다”며 어려운 말 때문에 소외당하는 이 없이 한국인끼리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국어 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은 살아남았고 누리터 쪽그림은 사라졌다. 어떤 말이 남을지는 국민이 결정한다. 국어 순화의 역할은 외국어를 몰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대안을 제안하는 데 있다.
순화어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말로 인한 정보 격차를 줄이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에 국어 순화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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