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13기] 광복 81주년에 돌아보는 한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 - 13기 오예은

by 한글문화연대 2026. 8. 28.

광복 81주년에 돌아보는 한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3기 오예은
tera44444@naver.com

 

조선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 국립국어원까지
우리 문자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돌아보다

지난 7월 9일, 경남 의령군은 ‘의령한글공원’ 준공식을 올렸다. 한글공원은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힘쓴 한글학자 3인을 기리고, 한글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원에는 의령 출신의 한글학자 이우식, 이극로, 안호상 선생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세 한글학자는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의령한글공원은 광복절을 앞두고 완공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올해 광복절은 광복 81주년을 기리는 날이다.

▲ 한글공원 준공식 사진. 설치된 한글학자 3인의 동상과 오태완 군수, 한글학자의 후손들이 함께 있다. (출처: 의령군청 보도자료)


우리 글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시절부터 여러 어려움을 지나왔다. 조선시대 당시, 중국의 글자인 한자는 하늘의 글자였다. 당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과 같았고, 이는 곧 중국의 분노를 사는 행위였다. 대신들의 훈민정음 편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뜻을 제대로 펼 수 있게 새로운 글자 28자를 만드셨다. 이 글자를 당시 양반들은 한자보다 미천하다고 생각했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나 여자가 쓰는 글자라고 받아들였다. 중국 역시 조선의 왕이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에 매우 분노하였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김진명 소설가가 힘을 합쳐 지은 장편소설 『세종의 나라』에 생생하게 나와 있다.

▲ 김진명 작가 장편소설 『세종의 나라』 (출처: 세종의 나라 홈페이지)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있었다.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한글 탄압에 반대하며 1931년 설립된 민간 단체였다. 조선어학회는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데에 힘썼으며, 올바른 한글을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선어대사전』 편찬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학회의 핵심 회원들이 독립을 꾀한다는 혐의로 대거 체포되며 해체되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던 일제에게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종의 독립운동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석방된 조선어학회 인사들은 학회를 재건하고 글자를 바로 세우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올바른 한글과 글 문화를 위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말 큰사전』의 사진. (출처: 한글학회 자료마당)


국립국어원의 말을 순화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성공적인 사례로는 ‘도시락’, ‘갓길’, ‘댓글’이 있다. 도시락은 일본어 ‘벤또(辨當, べんとう)’를 풀어쓴 말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사람들은 벤또(辨當, べんとう)’, 바께쓰(バケツ), 빠꾸오라이(バックオ-ライ) 등 일본 단어를 다수 사용하였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립국어원에서는 꾸준히 말을 한글로 다듬어 발표하고 있다. 기존에는 갓길 대신 ‘노견(路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노견은 직역한 ‘길어깨’로 풀어졌다가 널리 사용되지 않자 가장자리 길이라는 의미인 ‘갓길’로 순화되었다. 두 차례 순화한 것에서 국립국어원의 꾸준한 노력이 엿보인다. 댓글은 ‘리플(reply)’이라는 단어를 풀어쓴 말이다. 이는 본문에 달린 글이라는 의미에서 댓글로 순화된 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이런 순화어는 국어국립원 누리집의 ‘다듬은 말’ 항목에서 볼 수 있다.

▲ 국립국어원의 다듬은 말 항목 화면 (출처: 국립국어원 누리집)


한글은 길고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우리 문자를 지키기 위한 선대의 노력은 외국어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는 현세대에게 고민할 거리를 전달해 준다. 외국어로 쓰인 간판이나 차림표 등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광복절을 맞아 우리 고유 문자의 소중함을 떠올려 보아야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