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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13기] 훈맹정음 100년… 기술은 발전했지만 ‘읽을 권리’는 충분한가

by 한글문화연대 2026. 10. 13.

 

훈맹정음 100년… 기술은 발전했지만 ‘읽을 권리’는 충분한가

 

정현지 기자 sue9342@naver.com

 

점자정보단말기·인공지능(AI) 기술 발전… 디지털 환경에서 넓어지는 한글점자의 영역

무인단말기·의약품 등 일상 곳곳엔 여전히 정보 접근 장벽… ‘언어 접근권’ 보장 필요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한글점자 ‘훈맹정음’이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한글점자는 점자정보단말기와 스크린리더 등 정보화 기술과 만나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돕는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무인단말기와 의약품·생활용품 등 일상 곳곳에서는 여전히 점자 표기와 음성 안내가 부족해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훈맹정음 100년을 맞아 ‘모두를 위한 한글’이 되기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1926년 11월 4일, 송암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자신의 언어로 읽고 쓸 권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훈맹정음은 이후 한글점자의 토대가 됐다.

 

점자정보단말기, [출처] https://himsintl.com/kr/blindness/view.php?idx=15


한글점자는 이제 종이와 책을 넘어 정보화 환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 대표적인 것이 점자정보단말기다. ‘한소네’와 같은 점자정보단말기는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에 입력된 문자를 점자로 변환해 사용자가 손끝으로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히 저장된 문서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검색이나 문서 작성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화면낭독기(스크린리더) 역시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화면에 표시된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점자정보단말기와 연동해 촉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접목되면서 변화의 폭이 커지고 있다. 이미지나 화면 속 정보를 인식하고 이를 음성으로 설명하는 기술 등이 등장하면서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만큼 일상의 환경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인단말기이다. 주문과 결제 과정이 대부분 화면 조작을 통해 이뤄지는 무인단말기에는 시각장애인이 화면의 정보를 확인하고 조작할 수 있는 점자나 음성 안내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거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예매하는 일처럼 비장애인에게는 간단한 일도 시각장애인에게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생활 속 제품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의약품이나 식품 등에 점자가 표시돼 있더라도 제품의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단순히 ‘음료’, ‘약’과 같은 범주만 표시된다면 시각장애인이 여러 제품 가운데 원하는 제품을 스스로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점자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느냐다.

 

 

송파구 일대 상권을 방문한 결과, 대부분의 무인단말기에는 점자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화면에는 수십 개의 선택 항목과 결제 항목이 표시돼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안내 장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단순히 편의시설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다. 무인단말기를 이용해 주문하고 결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보를 확인하고 선택할 권리, 즉 정보 접근권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맹정음이 시각장애인에게 ‘읽을 권리’를 열어준 지 100년이 지났지만, 정보화 환경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장벽이 등장하고 있다.

 

 

반면 모든 무인단말기가 시각장애인의 접근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었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은행과 우체국의 일부 무인기기에는 점자 안내가 마련돼 있었다. 또, 시각장애인이 직접 이어폰을 연결해 음성 안내를 들을 수 있도록 별도의 단자도 설치돼 있었다. 기기에서는 이어폰을 연결해 음성 안내를 이용하라는 안내도 제공됐다.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지 100년. 한글점자는 종이에서 정보화 기기로, 점자판에서 무인단말기 기술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은행과 우체국처럼 점자와 음성 안내를 갖춰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인 사례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무인단말기와 생활용품에서는 시각장애인이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확인하기 어렵다.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모두에게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정보를 읽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일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권리다. 메뉴를 고르고 물건을 선택하는 작은 일상에서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100년 전 손끝에서 시작된 ‘읽을 권리’가 정보화 시대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과 함께 일상 속 접근성을 높이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훈맹정음 100주년은 과거의 성취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가 누구에게나 읽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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