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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전례 없는 새로운 붓과 물감, 한글의 자음과 모음 - 정희섭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6. 7. 28.

전례 없는 새로운 붓과 물감, 한글의 자음과 모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정희섭 기자

jheesup3@naver.com

 

2015년 2월 2일 오후 국회본회의장서 열린 제 331회 국회(임시회)는 이전과 달랐다. 국회가 상징 문양을 바꾸었다는 것이다(아래 그림 참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상징하는 국회기, 국회의원 배지 등의 문양이 한자 ‘國’으로 되어있어 한글을 주로 사용하는 현실에 맞지 않고, 기존 국회의원 배지 안의 ‘國(국)자가 或(혹)자로 오인될 수 있다’는 지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존중하는 취지를 반영하여 변경했다는 것이 국회의 설명이다.

 

나라의 살림을 전반적으로 담당하는 국회가 드디어 국민의 시선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숨은 뜻에서 비롯된 것일까. 공식적으로 표방한 이유 외에 숨겨진 뜻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의 국회 문양 변화는 상당히 반갑다. 개정의 이유는 둘째치고 개정된 문양 자체만 바라보아도 이전과 비교하면 굉장히 부드럽고 친숙해 보인다. 한글 사용의 효과라고 할 수 있을까. 국회 상징 문양 변화를 통하여 최근 관심을 모으는 ‘한글 디자인’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추어 보고 싶다.

(변경 전) (변경 후)

 

국회에서 내놓은 문양 변화 이유는 ‘한글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굳이 주변에서 증거를 찾지 않아도 쉽게 수긍이 된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우리가 입는 옷과 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문양을 비롯한 예술이나 그림의 영역에서만은 이러함이 예외인 듯 느껴졌었던 것이 사실이다. 영어의 로마자와 다른 외국어 문자의 상징 문양이 우리 주변을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국회의 문양 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이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의 필요성과 그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한글 디자인’의 물결이 일고 있다.

 

우리는 어떤 문자(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알파벳과 동양의 문자를 제외하고)를 처음 볼 때 그 의미를 곧바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모양 자체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글자가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어떤 ‘형체’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글을 배우고 익히며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우리가 한글을 보았을 때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한글의 뜻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시점에서 한글의 히읗, 비읍, 시옷 등의 자음은 굉장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글의 조형적 아름다움에서 출발한 한글 디자인 특유의 조형미와 분위기가 한글을 더욱더 한글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창의적인 한글 디자인 제품으로 한글문화상품 공모전에서 세종대왕상, 특허청의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금상을 각각 수상한 ‘손아트’ 대표 손민정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손 대표는 “김치, 한복 등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품목이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한국인의 어울림 문화가 담긴 한글”이라고 강조한다(2012년 경제 월간지 마이더스 10월호 인터뷰 인용). 자음과 모음 24자가 어울려 12만 종류가지의 소리를 낼 수 있어 세계 어느 나라의 말도 받아쓸 수 있고 형태 또한 아름다워 어떤 상품의 디자인으로 들어가도 물건의 가치를 한 차원 높여 준다며 각별한 한글의 디자인화에 힘쓰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한글 디자인의 효과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글 글꼴 용어 사전>에서는 한글 디자인을 이렇게 풀이한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정신을 살리고 현대 기술의 힘을 빌어려 최대한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상적인 한글꼴을 제작하는 하나의 과정.’ 한글 디자인은 한글의 심미적인 가치나 조형미를 부각하는 효과 이외에도 한글의 창제 원리를 넌지시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한글에는 발성 기관의 모양을 닮은 자음과 천지인을 기반으로 한 모음의 체계적인 조합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한글의 글자들의 꼴은 매우 단순하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예컨대 예사소리 ‘ㄱ’을 두 번 겹쳐 표현하고 거센소리 ‘ㅋ’은 가로획을 하나 더 첨가한 점은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발상과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체계적인 조음 방법과 결합법을 통해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인정받는 한글을 디자인화함으로써 그 원리와 과학성을 쉽게 사람들에게 대중화할 수 있다.


다음 사진은 한글디자인상품 브랜드 ‘이건만’의 상품이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이응’ 자음 사이마다 서로 다른 자음들이 각자의 모양을 갖추어 배열되어 있다. 한글의 독창적인 조형성을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은 물론 한글의 제자 원리 및 낱자의 특징과 한글 자음과 모음에 관한 구조적인 부분들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디자이너의 통찰력이 우리를 다시 한 번 한글의 예술성과 원리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 같다.

세계는 지금 한글의 예술성에 다시 한 번 주목한다. 특유의 조형미와 분위기,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하려는 시도가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정부도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는 대한민국 우수 자산인 ‘한글’을 우리 문화의 가치 창출의 원동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제2회 한글 창의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글과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한글의 문자적 가치 이상의 새로운 한글 상품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2016 제2회 한글 창의아이디어 공모전 포스터)

 

‘디자이너’ 세종의 작품인 한글을 붓과 물감 삼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려는 많은 움직임들은 한글을 더욱 한글답게 만들며 그 가치를 알리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디자인은 디자이너만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손아트’ 손민정 대표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글 디자인 상품은 공항 면세점, 인사동 관광 상점, 국립박물관 기념품점 등에서 주로 관광 기념품으로 팔린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기업에서도 홍보용으로 많이 찾는다. 하지만 아직은 고가로 인식돼 생활용품보다는 주로 장식용품으로 판매되는 실정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한글 디자인 부직포 가방이나 안경닦이 수건 등 저가 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옷장으로 달려가 지금 내가 가진 옷을 보거나 쓰고 있는 상품들의 상징표를 보아도 한글로 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가 한글 상징표로 기존의 것을 바꾸었다는 이유 중에는 ‘한글을 주로 사용하는 현실에 맞지 않고’ 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것이 비단 문자로서의 한글에만 국한되어있는 표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디자인하여 한글의 대중화와 아름다움을 전하는데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고 실천하는 우리의 움직임이 발맞추어 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결과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라는 붓과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고 이를 전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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