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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5

어리눅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59] 성기지 운영위원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벌써 열 달째 점심밥을 밖에서 먹지 못하고 줄곧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온종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서인지 요즘에는 일하다 말고 깜박깜박 졸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정신이 맑지 못하고 기운이 없어서 갑자기 누가 무슨 말을 걸면 얼른 알아듣기도 어렵고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진다. 이런 상태를 우리말로 흔히 ‘어리버리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어리버리하다’는 말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려면 ‘어리바리하다’고 해야 한다.비슷한 말 가운데 ‘어리마리’란 말도 있다. ‘어리마리’는 잠이 든 둥 만 둥 하여 정신이 흐릿한 상태를 뜻한다. 정신이 맑지 못하면 어리바리하고 어리마리한 것이지만, 그러다 의자에 앉은 채 .. 2020. 11. 12.
우리와 저희 [아, 그 말이 그렇구나-358] 성기지 운영위원 대명사로 쓰이는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 자기를 포함하여 자기편의 여러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공손히 말해야 할 상대 앞에서 ‘우리’라는 말을 쓸 때에는 이 말을 낮추어야 하는데, ‘우리’의 낮춤말이 바로 ‘저희’이다. 따라서 손윗사람에게나 직급이 높은 사람, 또는 기업이 고객을 상대로 할 때에는 ‘우리’ 대신 ‘저희’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우리’는 말을 듣는 상대방까지도 포함할 수 있지만, ‘저희’에는 말을 듣는 상대방이 포함되지 않는다.가령, 같은 회사의 상급자에게 “저희 회사가…”라고 말한다면, 그 상급자는 그 회사 사람이 아닌 것이 되니 주의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말을 듣는 그 상급자도 같은 회사 구성원이므로, 비록 손윗사람이지만 “우리 회.. 2020. 11. 4.
이르집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57] 성기지 운영위원 부부싸움을 할 때 감정이 격해지면 예전에 서운했던 일들을 들추어내게 된다. 그러다보면 싸우게 된 빌미는 잠시 잊어버리고 그동안 가슴 안쪽 깊숙이 담아 두었던 것들에 불이 지펴져서 종종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 지나간 일을 들추어내는 것을 ‘이르집다’라고 한다. 흔히 “남의 아픈 데를 이르집다.”라고 말할 수 있다.이 말은 또, ‘없는 일을 만들어 말썽을 일으키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냥 지나가면 될 텐데 괜히 이르집어서 이 난리를 피우냐.”처럼 말할 수 있다. 본디 이 말이 처음 생길 때는 “밭을 일구기 위해 단단한 땅을 이르집었다.”처럼 ‘흙을 파헤치다’는 뜻으로 썼다. 그러던 것이 사용 범주가 차츰 넓혀져 현대에 와서는 ‘오래 전의.. 2020. 10. 28.
어간재비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7] 성기지 운영위원 실현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 가운데 층수 제한 완화가 끼여 있다. 35층까지로 규제해 오던 서울시 아파트 층수를 50층까지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한강을 따라 늘어설 50층짜리 주택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 큰 덩치에 또다시 가로막힐 팍팍한 서민들의 삶이 그려졌다. 서울을 높은 곳과 낮은 곳으로 나누게 될 고층 아파트들! 그 어간재비는 또 얼마만 한 그늘을 만들어낼 것인가! 어떤 공간을 나누기 위해 칸막이로 놓아둔 물건을 ‘어간재비’라고 한다. 집안 거실을 높은 책장으로 구분해 놓으면 그 책장이 어간재비이고, 사무실 책상들 사이를 칸막이로 막아 놓으면 그 칸막이가 어간재비이다. 때로는 특정 이념이나 종교가 사회 구성원을 나.. 2020. 8. 12.
외상말코지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6] 성기지 운영위원 어릴 때 어머니 심부름 가운데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외상으로 물건 사오기였다. 그렇잖아도 숫기가 없었던 터라 돈도 없이 물건을 사온다는 건 엄청난 부끄러움을 감내하고 대단한 용기를 내야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신용카드 한 장으로 얼마가 됐든(그래도 5만 원 넘는 외상엔 간이 졸아들지만) 어디서든 외상을 떳떳이 한다. 달라진 시대는 두께가 1밀리미터 남짓한 플라스틱 안에 모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순 우리말에 ‘외상없다’라는 말이 있다. “조금도 틀림이 없거나 어김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토박이말이다. 가령, “그 사람은 참 성실해서 무슨 일이든지 외상없이 해놓곤 한다.”라고 쓸 수 있다. 신용카드는 비록 30일 안에 물건값을.. 2020.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