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3] 김영명 공동대표
사대주의가 문제다.
한국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배치하겠다는 정부 발표 이후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정부는 사드를 배치할지 안 할지 정한 바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약간의 콧방귀를 뀌면서 ‘곧 배치하겠구먼!’ 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이유는 뭘까? 북한 핵, 북한 미사일, 북한 공격 등등 북한 때문인가? 사드를 들여오면 북한 공격을 잘 막을 수 있을까? 그렇다는 말도 있고 안 그렇다는 말도 있고, 정치학자인 나도 그쪽 전문가는 아닌지라 잘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나보다도 더 모르는 절대다수의 대중들도 뭘 아는지 찬성이니 반대니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사드를 곧 배치하겠구먼 하고 생각한 결정적인 까닭은 미국 정부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대학 수업 중에 우리 민주화 이후 미국 정부가 원하는데 우리 정부가 안 한 것 있으면 찾아와 보라고 숙제를 내었다. 학생들이 못 찾았다. 그런데 있기는 있다. 미국 정부는 우리 군대가 전시 작전권을 가져가기를 원하고 두 정부가 합의까지 했는데, 우리 정부는 감히 미국 말을 듣지 않고 한사코 가져오지 않겠다며 약속을 어겼다. 미국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을 만큼 우리가 자주적이 되었나? 아니다. 완전히 그 반대다. 군 작전권은 주권국의 기본 요건인데도 이를 안 가져오겠다면서 드는 이유가 돈이 많이 들고 북한 군 침략을 스스로 막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앞의 이유라면 그래도 좀 나은데, 뒤의 이유라면 정말 한심하다. 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이 분야 전문가들이 끝이 안 나고 평행선만 그을 뿐일 토론을 해 보아야 하겠지만, 사실 이런 구체적인 문제는, 진짜 이유처럼 보이지만 진짜 이유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대다수 우리 국민들 속에 있는 일종의 대외 의존 의식 또는 사대 정신이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는 못 사는 의존성 말이다. 오랫동안 강대국에 시달리면서 살아오는 동안 강대국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것이 일종의 유전자처럼 우리 몸 속에 배어 있다. 그래서 강대국에게 기대지 않으면 불안하고 강대국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전전긍긍한다. 이런 현상은 일반 대중보다는 엘리트층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그것은 이런 대외 의존 관계에서 엘리트층이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대중이 이익 볼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정부와 엘리트는 외세와 결탁하고 대중은 그 정부와 외세에 저항하는 일들이 한국 역사에서 자주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었지만, 이런 현상은 요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내가 종북 좌파 반미주의자가 될 것 같아 덧붙인다. 야당도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사드 배치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국 눈치를 본다. 더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중국 측 입장을 들어보겠다고 중국에 가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이들은 중국에서 조심하는 기미가 역력했다. 그런데 왜 우리와는 달리 중국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 입장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을까? 중국 사람들은 자기 신문들을 통해서 한국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고 경제 보복을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측 입장을 들어보겠다고 정부 관리나 언론인이나 지식인이 오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면 왜 우리는? 중국이 겁이 나서 그렇다. 사드 배치가 미국이 겁나서 정해졌다면 사드 반대파의 중국 방문은 중국이 겁나서 정해진 것이다. 뭐든지 겁이 나서가 아니고 “우리 이익이 이러니 우리는 이렇게 한다”고 좀 당당하게 나설 수 없을까?
우리는 외국에 나가면 외국 말을 해야 하고 외국 법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또 그 외국인에게 맞추어서 영어도 하고 중국어도 하고 일본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이 불편하지 않게 온갖 서비스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명동은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다. 그렇게 해야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말이 잘 안 통한다는 이유로 또는 한국어 서비스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외국 관광 계획을 취소하는가? 오히려 낯선 외국 문물이 더 신기하고 좋지 않은가? 물론 외국인을 위한 어느 정도의 서비스는 해야 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영어를 잘 하기 위해 오렌지를 어륀쥐로 발음해야 한다고 우기는 일과 같다.
우리가 외국에 가면 외국에 따라야 하고 한국에 외국인이 와도 우리가 외국인에게 맞춰야 한다는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깊이 뿌리 내린 사대적 집단 심리일 뿐이다. 이런 집단 심리는 우리 삶 모든 부분의 구석구석에 박혀서 사드 문제이든 영어 공용어 문제이든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외국인은 한국에 한국을 보러오지 어설픈 외국 흉내를 보러 오지 않는다. 그것을 모르는 우리의 뿌리 깊은 사대 정신, 이를 어찌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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