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1] 김영명 공동대표
나는 아무래도 고전에 감흥을 못 느끼겠다.
나는 아무래도 고전에 감흥을 못 느끼겠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것 같으니 아무래도 이건 고전이 아니라 내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아니 상당히 많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는 사실이다.
논어, 맹자, 장자, 도덕경, 성서, 꾸란 등등 읽어보아도 별 감흥이 없다. 물론 한글 번역판이다. 논어, 맹자, 장자 등을 한문으로 읽지 않고 겨우 한글로 읽었으면서 무슨 망발이냐고 말하시고 싶은 분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그러면 그대들은 성서를 히브리어로 읽고 꾸란을 아랍어로 읽으시나요?
동양 고전들은 거의 금언들인데 “어질게 살아라, 군자의 덕을 지켜라, 충을 하라, 효를 하라, 의리를 지켜라, 의를 실현하라, 그냥 놔두어라, 자유롭게 날아라” 이런 얘기들이다. 다 좋은 말씀들이고 지당한 설교이지만, 다 아는 얘기이고 그렇고 그런 말들 같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가가 아닐까? 그렇게 살 수 있는 훈련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유익할 것 같은데, 그런 것은 별로 없다. 있다면 불교나 다른 전통에서 나온 명상법, 호흡법 등등이고 아니면 다른 교양 교육들이다.
논어 말씀은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기쁘니 아니한가?” “배워서 널리 익히면 아주 좋다.” “옛것을 세우고 새것을 익히자.“ 뭐 이런 건데, 그게 뭐 특별한 말들인가? 나도 한 마디 거들자. “오랜만에 이발을 하니 시원하구나.” “오래 된 빚을 갚으니 한시름 놓이는구나.” “이웃이 어려우면 밥 한 술 주거라.” “여자와 남자가 싸우지 말고 잘 지내거라.” 앉은 자리에서 한 50개는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나밖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도 이런 말을 남에게는 처음 하는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남한테 발설하는 것이 겁이 나서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사실 이 말을 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몹시 궁금하다. 그렇다고 겁이 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나이에 그런 말 해서 욕 좀 먹는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이 글을 읽을 사람은 몇 명 되지도 않을텐데. 논어 독자의 수 경 분의 1일텐데...
그러면 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거나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아니 그러기는커녕 어제도 오늘도 고전을 가지고 우려먹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줄을 서고 있다. 고전에 나오는 한 구절을 가지고 책을 쓰고 텔레비전 강의를 몇 달 동안 하고...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사실 수는 있는데 그 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도대체 고전 한 구절에 어찌 그렇게 많은 내용과 깊은 뜻이 들어있는지 참 신기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왜일까? 왜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고전을 그렇게 우려먹을까? (내일도 그럴 것이 확실하다.) 우선 고전이 가진 불후의 가치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왜 고전은 그런 불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잘 아는 것은 고전의 구절들이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고전들 덕분에 그 내용이 상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거기에는 정말로 그 이전부터 상식이었을 것 같은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고전의 강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상식적인 금언들이기 때문에 그 상식적인 금언들을 동서양 어느 때 어느 곳에도 다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기 때문에 지극히 보편적이고, 지극히 보편적이기 때문에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다 떠받들 수 있고 어느 때 어느 곳 어느 상황에도 다 적용할 수 있다. 노자의 자유롭게 날아라는 현대의 정보통신 사업에 적용할 수 있고, 공자의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서 기쁘다는 현대 지리학과 현대 심리학에 갖다 붙일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말한 이발해서 시원하다는 현대 기계학(바리깡!)과 현대 기상학과 현대 뇌 과학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여자와 남자가 싸우지 말라는 현대 여성학과 갈등 이론에 적용할 수 있겠다.
내가 너무 건방지고 불경한 말을 한다고 나무랄 사람이 많을 줄 알지만, 솔직히 고전을 우려먹는 수많은 저술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만날 이런 소리나 해대는 내가 바로 그래서 출세를 못하는 것도 나로서는 어쩌지 못하겠다.
'사랑방 > 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대주의가 문제다. (2) | 2016.08.10 |
---|---|
스포츠 콤플렉스 (0) | 2016.06.15 |
그림을 시작하고 보니(2) (0) | 2016.01.21 |
그림을 시작하고 보니(1) (0) | 2016.01.12 |
정명훈, 신경숙, 백낙청... 예술의 이름으로 (0) | 2015.09.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