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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반미에 대하여(5)

by 한글문화연대 2017. 6. 15.

[우리 나라 좋은 나라-68] 김영명 공동대표

 

이렇게 보면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 진정한 반미 구호나 반미 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사실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도 일어났지만 이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어났던 전쟁 반대 시위가 반미 시위로 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2003년 이후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였으며 반미 감정도 이념적인 것보다는 정책적 차원의 반미가 많았다. 그러면 왜 당시 한국 사회에서 반미라는 것이 쟁점이 되고 우려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간단히 적어보자.

 

1)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보수층이 반미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친미 구조가 지배해 왔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층은 미국에 대한 별로 강하지 않은 비판이나 항의에도 거부감을 느끼고 이를 반미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분단 현실과 그로 인한 남북한 긴장 관계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결국 반미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한미관계에 대한 이념이나 생각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대체로 보수적인 학계에서는 부정적인 대미 인식과 반미 감정의 악화를 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2)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하는 관계’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런 대통령의 말은 우리나라에서 사실 획기적인 말이었고, 그만큼 한국의 보수층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고, 노 대통령 집권 시기에 한미 관계에 이렇다 할 변화도 없었다. 노무현은 공연히 필요 없는 말을 하여 분란만 일으킨 셈이다. 한미관계 뿐 아니라 많은 정책 쟁점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행동이 미처 따르지 못하는 말을 앞세워서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고는 했는데, 이 문제도 그 일환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통령의 이런 말이 한미관계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이것이 반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높인 것도 사실이다. 

 

3) 많은 국민들이 가진 북한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대다수 한국 국민들 사이에는 반미 정서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이런 점은 특히 보수 우파 인사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데, 정말 특이하게도 우리 나라의 우파들 중에는 국수주의자가 아니라 그 반대인 사대주의자들이 많다. 그것이 특이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원래 국가의 융성과 민족의 영광을 추구하는 국가주의나 국수주의는 우파의 이념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분단 상황과 대미 의존 관계 때문에 우파는 대외 의존적이고 사대적인 반면, 민족이나 국가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인 주장은 오히려 좌파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4) 당시 반미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된 또 다른 까닭은 한국인들 사이에 미국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친미의 보수적인 정서와 생각을 견지하였으나, 탈냉전과 남북한 화해 무드에 힘입어 한미관계에 대해서 과거보다는 좀 더 유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민주화와 더불어 사상과 이념의 자유 폭이 확대되었고, 경제발전의 결과 대외적인 자신감도 과거보다는 더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인들 사이에서 친미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라는 생각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이 보수층에게는 반미의 대두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 이를 자신이나 자신의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나 도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의 반미 운동의 대두’에 대해 우려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한국인들 사이에 이러한 인식상의 변화가 생긴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로 이념적인 문제를 보자.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루어진 민주화의 결과 한국 사회에 이념과 사상의 자유가 상당히 보장되게 되었고,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대북 화해 협력 정책과 그로 인한 사회 전반의 남북 화해 무드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상당히 완화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생각의 변화가 오게 되고, 북한을 적으로서뿐 아니라 동포로 또 통일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커졌다. 정치권에서도 이제 더 이상 ‘레드 콤플렉스’가 큰 힘을 방휘하지 못하게 되고 ‘북풍’이 선거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안보 문제의 정치적 이용도 곤란하게 되었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적대적인 대북 정책이 남북 관계를 다시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이념 구도가 과거보다는 덜 보수적으로 된 것은 사실이다.

 

한편 2001년 아들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행동이 세계 많은 나라들의 반발을 샀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미국의 행동에 대한 반발심이 젊은 세대와 진보적인 세력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한미 관계의 불평등성에 대한 인식이 이들 사이에서 고조되었다. 이런 거시적인 조건들의 변화 속에서 미군 주둔에 따른 국민 생활의 불편이나 미군 병사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판도 고조되었다. 따라서 반미적인 행동이 나타나거나, 반미는 아닐지라도 한미 관계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변화는 한미 동맹의 구체적인 내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였다. 이렇게 보면 이른바 반미 정서나 운동의 대두에는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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