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8] 김영명 공동대표
앞에서 어떤 것이 반미이고 어떤 것이 반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 보자. 과연 반미는 우리에게 바람직한가 아니면 손해인가 하는 질문이다. 어찌 보면 반미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라(지금 한국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이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또 앞서 봤듯이 우리나라의 ‘반미’는 진정한 반미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각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서 반미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논의의 일관성을 위해 그 말을 계속 사용하기로 하자. 그러면 반미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논자에 따라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 기준을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손해가 되는가로 잡기로 한다. 미국 정부나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우리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가 그것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 경우 무엇이 국가 이익의 중심 요소가 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로 거론되는 것이 국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이다. 그래서 이 두 문제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미국을 배척하고 한미동맹을 파기하고자 한다면 이는 명백히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고 한국을 무력으로 침략할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반미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반미를 주장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을 것 같지 않고, 간혹 있더라도 무시할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반미 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와는 매우 다른 상황이다.
그러면 한미 동맹을 파기하지는 않더라도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경우는 어떨까? 그런 사람들은 2000년대까지 제법 있었지만 요사이는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 자체를 반미라고 하기 어렵다는 점은 위에서 밝혔지만, 어쨌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꽤 큰 세력을 얻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한국이 그런 상황이라면 정치적, 이념적으로 큰 논쟁이 일어날 것이고, 한미 간에도 많은 토론이 일어나고 양국 간에 긴장 상황이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주둔을 포함한 현재의 군사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런 긴장 상황 자체가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어떻게 될까? 주한 미군의 주둔 목적이 북한에 대한 억지력에서 중국 견제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그럴 경우가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만의 하나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철수할 것이고, 또 실제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국가안보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미군이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주한 미군 철수 문제는 반미 문제하고는 별개다. 한국인이 반미 운동을 한다고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한국 정부가 친미 정책을 펼친다고 철수 안 하는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고려하여 주한 미군 철수든 감축이든 증편이든 결정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반미 운동이 실제로 일어나면 미국 정부가 주한 미국의 철수나 감축 협박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행동은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한 뒤에 이루어질 것이다.
2002년 촛불 시위가 일어났을 때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것이 우리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촛불시위가 반미로 비쳐지고 사회 혼란으로 비쳐져서 외국 투자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고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신문 보도들은 외국 신용평가기관들의 이런 움직임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시위로 국가 신인도를 조정한다면 그 조정 기관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 측에서는 한국의 ‘반미’ 시위를 구실 삼아 주한 미군 철수 설을 흘리면서 은근히 협박하기도 했고, 그것이 미칠 경제적 악영향을 두려워하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외국인 투자에 어느 정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는 단언할 수 없다. 충분한 일정을 두고 군사적 보완책을 마련한 뒤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철수라면 큰 충격을 몰고 오지 않을 것이다. 근거 없는 철수 설을 진화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경제적 악영향 때문에 미군 철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그와는 반대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002년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언론은 다투어 월드컵의 경제 효과가 얼마나 될지 계산하기 바빴다. 대개 수십 조 원이 된다는 얘기였는데, 그 뒤에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었나? 장밋빛 환상과는 반대로 한국 경제는 하락 일변도였다. 월드컵을 개최했는데도 경제가 하락했다면 월드컵 안 했더라면 우리 경제는 완전 파산했을 것이라는 말인가? 언론의 호들갑은 믿을 것이 못된다. ‘반미’ 시위가 한국 경제를 하락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마찬가지로 호들갑이었다. 언론의 이런 호들갑은 좋은 일에서나 나쁜 일에서나 언제나 나타난다. 그것이 언론의 한 속성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반미적이 되어 미국 기업체들을 공격하고 1982년처럼 미 문화원에 불 지르거나 1961년처럼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가 되어 민족 공조를 위해 한미 동맹을 업신여기거나 외국 기업이나 투자자에 대해 불리한 정책을 펼친다면, 그런 상황은 물론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니 이런 반미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반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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