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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반미에 대하여(4)

by 한글문화연대 2017. 6. 1.

[우리 나라 좋은 나라-68] 김영명 공동대표

 

그런데 반미 시위는 꼭 나쁜 일로 매도당해야 할까? 미국 체제와 이념의 근간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 행위 자체가 꼭 나쁜 것으로서 매도당해야 하는가 하는 말이다. 이는 이념에 관한 문제라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미국 자체에 대한 반대가 금시 사항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생각은 다 자유이니까. 그걸로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그보다 더 구체적인 쟁점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시 시위자들이 반미라고 매도당하지 않기 위해서 미군 철수 주장을 안 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미군 철수 주장을 하면 그것이 반미일까? 논리상 그렇지 않다. 만약 미군 철수 주장이 반미라면 주한 미국 철수를 공약으로까지 내세우고 실제로 1개 사단을 철수하기까지 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무엇인가? 최근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데, 그는 반미주의자인가? 물론 미국 사람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과 한국 사람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을 같은 선에 놓고 평가할 수는 없다.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을 빼가겠다는 것은 아무리 강경한 주장이더라도 반미일 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인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면 그것은 반미인가? 
 

어떤 한국인이 미군 철수를 주장한다면 거기에는 몇 가지 까닭이나 배경이 있을 것이다. 우선 미군이 전쟁 억지가 아니라 전쟁 도발을 위해서 남한에 주둔하고 있다는 북한과 같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주장이라면 분명히 반미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군이 대한민국에 있는 것은 제국주의적 지배를 영속하기 위해서라는 일부 극단론자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군사력만으로도 북한을 이길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한반도 바깥에 주둔하는 미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 미군이 한국에 반드시 주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런 주장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것은 반미적인 주장인가? 그런 주장이 반드시 반미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을 중요시하고 미국 체제의 성격이나 미국의 외교정책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도 한국의 자주 국방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입장이 들어설 여지가 없을 만큼 우리의 이념적 자리가 매우 좁다는 사실이다. 반미와 친미 사이에 다양한 의견과 자세가 있을 수 있는데, 한국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모 아니면 도 식의 흑백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그러면 두 여중생을 죽인 미군은 싫으니 이 땅에서 나가라는 구호는 어떨까? 이것은 반미인가 아닌가? 미국 국가와 사람에 대한 증오의 표현이니 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면 주한 미군 철수 구호라고 해서 다 반미 구호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매우 감정적일 수 있었던 2002년의 촛불시위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시위 주동자나 참가자들이 너무 현명한 것인가 아니면 너무 소심한 것인가? 아마 둘 다였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거기서 주한 미군 철수 구호가 나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려한 사람들이 생각했듯이 미국 정부가 북한을 위협하듯이 우리를 협박하였을까? 무디스 앤 푸어스가 한국의 신용 등급을 낮추었을까? 외국 투자자들이 중국이나 다른 나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을까?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당황하고 미국 정부는 불쾌하지만 짐짓 별 일 아니라는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특별히 우리에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의 촛불시위에서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이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미군의 책임을 추궁하는 그런 성격의 대중 시위에서는 그런 주장이 오히려 부분적으로나마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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