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우리는 ‘왜’ 그를 사랑하는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최지혜기자
jihye0852@naver.com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쉽게 윤동주를 떠올린다. 우리는 윤동주를 매우 익숙한 이름으로 기억한다. 중고등학교 국어, 문학 교과서에도 윤동주의 작품은 단골로 등장한다. 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윤동주의 시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는 그를 기리며 그의 일생을 담은 윤동주 문학관도 있고,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그렇다면 많은 시인 가운데 윤동주가 왜 한국인들에게서 오랜 시간 사랑받는가?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다. 명동은 조선 시대에서부터 힘들고 어려울 때나 종교적 혹은 정치적 박해를 피하려고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는 자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역사의식을 기르고 문학관을 정립했다. 그리고 졸업 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인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졸업사진(출처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의 미감 살려


 윤동주는 순하고 풋풋하면서고 일상에서 많이 쓰는 말을 시어로 많이 썼다. 마치 일기에 쓰듯 자기 고백을 중심으로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서정적인 시를 많이 남겼다. 특히 그는 하늘, 별, 달, 가을, 구름, 바람 등의 아름다우면서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을 써서 시를 읽고 감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의 시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서정적인 시어가 읽는 이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 예로 「별 헤는 밤」의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와 같은 구절이 있다. 이처럼 일상적인 시어로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시를 썼기에 윤동주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으로 주저 없이 꼽힌다.

△ 「별 헤는 밤」 일부 구절 (출처 본인)

△ 「참회록」 일부 구절 (출처 본인)

▲ 식민지 지식인의 기구한 삶, 호기심 불러일으켜

 

 2016년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큰 관심을 받고 흥행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에서 지식인이자 시인으로서 역할과 실천에 대해 고민한 윤동주의 삶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윤동주의 기구한 삶은 관객이 그의 시에 큰 관심을 두게 했다.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한 감정으로 표현하고 투명한 시심으로 노래하여 한국인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그의 죽음에 관해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은 시를 더 주목하게 한 요소 중 하나다. 윤동주는 일본에서 옥사했다. 그런데 윤동주의 사촌 송몽규가, 윤동주가 주사를 맞은 바 있다는 증언을 했고, 이 증언으로 윤동주가 일본의 생체 실험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전해진다. 그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과 부채 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그의 삶과 시에 더 열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는 한국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픈 시기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사망했다. 해방 6개월 전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러한 윤동주의 생애 때문에 한국인은 그를 더 기억하고 그의 시를 좋아할 수도 있다.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낸 적이 없고,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 권 나왔을 뿐이다. 시집을 한 권밖에 남길 수 없었던 사연도 시인을 더 아끼게 한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표지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 ‘부끄러움’ 가지고 자기반성을 시로 노래해

 

 윤동주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시로 노래한 시인이다. 윤동주가 노래한 자기 성찰은 항상 ‘부끄러움’과 함께한다. 그가 독립운동을 한 흔적은 없지만, 자신의 선택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며 참회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절박한 시대 상황에서 자신이 실천적으로 행동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의 ‘부끄러움’은 조금 더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윤리를 소망하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게 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시를 쓰고 고뇌했다. 윤동주 시의 ‘부끄러움’은 윤동주의 삶과 시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윤동주를 ‘반성적인 시인’이라고 한다. 그는 끙끙 앓으며 자기반성 하는 사람이었다.

 

 동시대 시인으로 이육사가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한 저항 시인이다. 윤동주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인물이다. 그의 시에는 독립을 향한 강인한 의지와 굳건한 결단력이 잘 드러난다. 윤동주 시의 특징인 ‘부끄러움’과는 다른 정서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육사의 시보다는 윤동주의 시에 더 공감하고, 윤동주의 시를 더 많이 찾는다. 아마 윤동주의 ‘부끄러움’에  더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리다. 암울한 시대에 선봉에 서서 적극적으로 불의에 대항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기에 윤동주가 보인 성찰과 반성의 태도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느껴지기 쉬웠을 테다.


 한국인들에게 오랜 시간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윤동주가 한국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거나 그의 시가 흠 없는 위대한 역작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사랑받고, 그의 시가 오래 읽혀온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음은 분명하다. 쉬운 말로 아름다운 시를 지었고,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사연이 있었으며,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고 반성을 멈추지 않았던 것을 그 이유로 꼽아보았다.

 

 물론, 윤동주가 저항 시인인지 아닌지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고, 늘 그러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만 느낀 것이라면 시대의 방관자가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가 가진 힘이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최소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잘못된 과거에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지식인으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