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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땅과 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 - 김정빈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9. 5. 28.

땅과 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김정빈 기자
wkjb0316@naver.com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 35년이라는 참담한 역사가 있다. 우리나라를 민족 말살 정책으로 지배했던 일제는 우리의 역사, 문화, 전통 등에 손을 대며 우리의 정체성을 없애려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본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었고,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그 결과 광복 74주년이 된 지금까지 일제의 잔재는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지명이나 단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행정 편의를 위해 우리나라 여러 곳의 지명을 바꾸었다. 이른바 창지개명이다. 오직 식민지 통치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이 작업은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성과 그 지역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의 정체성을 없애고 일본과 동화시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만든 이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시로, 우리나라에 관광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인사동’이 있다. 인사동은 그 지역의 조선 초기 구획 구분 중 하나였던 ‘관인방’과 1894년 갑오개혁 때 쓰던 구분인 ‘대사동’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만든 지명이다. 그 지역의 원래 이름에 대한 고민 없이 행정적 편의를 위해 작명한 느낌이 물씬 나는 이름이다.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이 일제가 지은 이름인 ‘인사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 일제에 의해 왜곡된 서울의 지명 사례


  또한 ‘낙원동’은 그곳에 있는 탑골공원이 낙원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남동’은,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되었는데, 창경원 남쪽에 있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도시가 세워진 인천의 ‘송도’는 일제의 침략 도구인 군함 ‘송도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제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놓은 지명 60여 개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우리가 많이 쓰는 단어에도 일제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 일본식 한자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데, 워낙 많이 사용다 보니 일본식 한자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알더라도 습관적으로 쓰게 된다. 예를 들어보면, 먼저 ‘가(假)’자를 붙여 ‘임시’의 뜻을 더한 단어들이 있다. ‘가계약’, ‘가교’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한자 ‘가(假)’를 가짜, 거짓의 뜻으로 쓴다. 임시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가짜 계약’이 아니고 ‘가짜 다리’가 아니다.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가’를 ‘임시’로 바꾸어 ‘임시 계약’, ‘임시 다리’ 등으로 순화할 수 있다. ‘익’(益)자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더하다’ 혹은 ‘넘치다’ 등의 뜻이다. ‘익일’, ‘익월’을 ‘다음날’, ‘다음 달’로 순화하면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바른 우리말을 쓰게 된다.

 

  많이 쓰이는 일본식 한자어는 ‘고객’, ‘납득’, ‘망년회’, ‘매점’, ‘사료’, ‘수취인’, ‘지분’ 등이 있다. 이는 각각 ‘손님’, ‘이해’, ‘송년회’, ‘가게’, ‘먹이’, ‘받는 이’, ‘몫’으로 순화할 수 있다. 너무 많이 쓰이고 있어서 일본식 한자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쓰게 된다.

 

  누군가는, 이미 많이 쓰는 걸 바꿀 필요가 있냐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언어는 여러 영향을 받으며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땅과 말의 일본식 한자어는 우리가 원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유입도 아니었다.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우리 문화를 말살하면서 인위적으로 들여왔고 그래서 우리 원래의 지명과 낱말이 자리를 잃은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지명과 낱말들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게 옳지 않은가?  일제강점기 찌꺼기 대신 우리 정신이 깃든 우리말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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