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받아들인 일본 번역어의 뒷이야기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이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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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서양 말을 가져올 때,  번역 과정이 거의 없었다. 당시 조선은 서양의 근대 언어를 제대로 이해할 만한 능력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은 대부분 중국, 특히 일본에서 번역된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조선이 일본을 통해 비판 없이 받아들인 번역어는 어떤 것들 일까?

 

‘Roman’을 왜 ‘낭만(浪漫)’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우리가 낭만이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roman’이며, 중세 프랑스어 ’romanz’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romanz’는 12~13세기의 통속소설을 가리키며, 17세기에 들어서 ‘romanz’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형용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영어의 ‘romantic’, 프랑스어의 ‘romantique’, 독일어의 ‘romantisch’가 그에 해당한다. 이 단어들의 뜻은 모두 ‘공상적인’, ‘몽상적인’, ‘소설 같은’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근대화 시기에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 ‘roman’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자국의 언어로 번역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일본의 대문호 나츠메 소세키는 번역을 하기보다는 발음을 그대로 가져와 표기(차음표기)하기로 했다. 따라서 일본식으로 ‘로만’이라고 발음되는 한자인 ‘浪漫’의 음을 빌려 사용하게 되었고,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 넘어오면서 ‘浪漫’의 우리식 발음인 ‘낭만’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결 랑(浪)’과 ‘흩어질 만(漫)’. 일본에서 음을 딴 단어를 그대로 들여와 한자로 적으니 당연히 어원의 뜻을 담아내지 못하는 말이 되었다. ‘낭만’이라는 말은 뜻에서도, 음에서도 ‘roman’과의 관련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의 번역어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세상’이라 번역할 뻔한 소사이어티(Society)
  영어 단어 소사이어티(society)의 뜻은 ‘사회’이다. 메이지 시대에 서양을 직접 체험한 일본 학자들은 society라는 개념을 관찰·체험한 후 기존의 일본어 혹은 한자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오죽하면 미국을 사찰한 모리 아리노리는 적절한 society 개념을 전달할 수 없어 ‘소사이어티’(ソサイチー)로 음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음차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비난에 부딪혔으며, 학자들은 society를 ‘모임’, ‘동료’, ‘집회’, ‘교제’, ‘세상’ 등 수많은 단어로 번역했다. 특히 오랫동안 사용한 ‘세상’은 society의 유력한 번역어 후보였지만,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결국 계몽가이자 저술가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번역한 ‘사회(事會)’가 최종 번역어로 채택되었다. 심사숙고하여 번역 과정을 거친 만큼 일본은 ‘사회’라는 단어가 ‘society’가 가진 뜻을 완벽히 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번역한 사회를 바로 수용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society’가 ‘사회’와 완벽히 호응하는 개념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소사이어티(society)를 ‘사회(事會)’로 번역한 일본의 저술가, 후쿠자와 유키치


‘대체’보다 ‘깨달음’ 필요해
  영어 단어 인디비주얼 (individual), 리버티(liberty), 로(law), 네이처(nature), 월드 (world)를 번역한 한자어인 ‘개인’, ‘자유’, ‘법률’, ‘자연’, ‘세계’ 또한 일본의 번역어이다. 일본은 하나의 서양 개념어를 일본어로 바꾸기까지 20여 년, 길게는 40여 년의 시간을 들였다. 이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내부의 사회적 합의와 관심을 끌어내고, 이 과정에서 일본 대중은 우리나라 대중과는 달리 채택된 단어가 차음어인지, 번역어인지, 번역어라면 정확한 뜻을 담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물론 이제 와서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정착한 일본 번역어들을 한국만의 번역어로 대체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제라도 일본에서 건너온 상당수의 번역어는 원어가 가진 정확한 뜻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직접 번역하지 않고 바로 가져와 사용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이다. 어쩌면 그런 가운데 더 나은 말을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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