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에서 세계인 앞에 선 한글문화연대>


2019년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플레인 2019’에 참석하여 한국에서 한글문화연대가 벌이는 쉬운 말 운동을 소개하였다. 플레인(PLAIN Plain Language Association International)은 ‘국제쉬운언어협회’. 쉬운 단어와 분명한 문장을 사용하여 민주주의와 정의를 발전시키고 사회의 신뢰를 높이며, 쓸데없는 소통 비용을 줄이자는 ‘쉬운 언어(플레인 랭귀지 Plain Language)’ 운동 국제 조직이다. 1997년 캐나다에서 만들어져 지금은 35개 나라의 개인과 단체가 회원으로 활동하는데, 한국에서는 한글문화연대가 유일한 회원이다. 


플레인에서는 2년마다 국제회의를 열어 각 나라의 경험을 교류한다. 조금 서둘러 준비했더라면 전체 회의에서 발표할 수 있었으련만, 너무 늦게 발표를 신청한 바람에 주제별 분과 모임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 전 개막식 등에서 한국의 법제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 담당자 두 분과 국회 법제실에서 일하시는 세 분의 한국인을 만났다. 이 분들은 우리 발표에도 와서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셨다. 오슬로에 와서야 우리 한국인들이 발표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반가워했고, 우리의 발표가 끝난 뒤에는 매우 자랑스럽다고 했다. 


우리 발표 주제는 “한국의 쉬운 언어 운동이 시민의 알 권리와 안전을 지킨다.”였다. 영어로는 “Plain Language Movement protects the right to know and the safety of the citizens in South Korea.” 내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영문 원고를 다 외웠어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원고 보내놓고 다른 일 하느라 못 외웠다. 그런데 오슬로 현지에서는 시차 때문인지 너무 안 외워져 정말 고생했다. 18분 안에 마쳐야 하는데, 줄여서 편집하고 용을 써도 떠듬떠듬 겨우 외워보니 33분이나 걸리는 게 아닌가.... 중학교 때는 교과서 한 과를 통째로 외워오라는 숙제가 많았고, 분명히 잘 외워갔는데, 이젠 나이 들어 그런 건지, 시차 때문인지, 하여간에 너무 힘들었다. 결국 부대표와 슬라이드 하나씩 나눠서 주거니 받거니 돌아가며 발표를 하기로 했고, 큰 실수 없이 잘 마쳤다. 물론 나중에 영상을 보니 정말로 버벅대면서 조마조마하게 해낸 티가 역력했다. 그래도 중간에 ‘그린 푸드 존’이나 ‘싱크홀’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할 때면 재미있어하는 청중들의 잔잔한 웃음이 들려 힘이 나기도 했다. 발표 요지는 이렇다. 


한국에서 1990년대까지는 법률 등에 남아 있는 어려운 한자어가 문제였고, 2000년대부터는 영어가 어려움을 주는 용어로 떠올랐는데, 한글문화연대는 2000년대 들어서 이런 어려운 말을 쉬운 한국어로 바꾸는 일에 앞장섰다. 한글문화연대의 운동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알 권리와 평등권은 우리가 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인간적인 이유이다. 우리는 특히 시민의 안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용어들, 시민의 행복 추구를 가로막는 어려운 말들과 싸운다. 2017년에는 정부의 문서 800여 건을 조사하여 어려운 안전 용어 133개를 뽑아 정부에 개선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무관심과 법 개정의 어려움 때문에 이런 용어들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린 푸드 존, 스크린도어, 싱크홀과 같은 사례를 소개한다. 우리는 커뮤니티 케어와 같은 복지 용어, 보이스 피싱과 같은 민생 용어의 개선을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2012년부터 매년 3개월치 중앙정부 보도자료 3천 건을 조사하여 외국어를 남용하고 한글전용을 어기는 사례의 통계를 한글날에 발표해왔다. 즉각적인 효과도 있지만 개선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아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 18개 부처의 모든 보도자료를 일일이 조사하여 그 작성자에게 어려운 용어의 개선을 권고한다. 한달에 1천 건의 보도자료를 조사하고 평균 530건의 개선 요청 공문을 보낸다. 또한 언론에서 이런 용어를 사용한 기자들에게도 직접 개선을 부탁하는데, 한달에 평균 2천 건의 편지를 보낸다. 20여 언론사와 중앙정부 45개 부처청에 어려운 말 대신 쉬운 말을 쓰자는 벽보를 붙인다. 인권에 호소하는 우리의 운동은 공무원과 언론인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다. 우리 운동의 정신은 이렇다. “언어는 인권이다.”


우리 활동에 감동하였다며 경의와 지지를 보내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호주에서 오래전부터 쉬운 언어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닐 제임스는 자기네 잡지에 한국의 운동을 소개하겠다고 자료를 요청하였다. 플레인 회장 마그레뜨 크바렌(Margrethe Kvarenes)은 노르웨이 상황이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면서 우리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주었고, 참석자 전원이 한글문화연대를 응원하는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외친 구호는 우리가 한국에서 ‘파이팅’ 대신에 쓰는 말인 “아리아리”. 물론 내가 가르쳐준 말이다. 한글문화연대 아리아리!! 


눈은 안 보여, 귀는 안 들려, 입은 안 열려.... 어쩌다 헬렌 켈러처럼 지내야 했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운동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 보람 있었고 기뻤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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