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모두 회의중이어서 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마침 평범한 ‘일반 국민’의 분한 하소연이었다. 사는 곳이 제주도 같았는데, 거기 소방청에서 심장마비 환자를 구한 소방대원에게 주는 상이 ‘하트 세이버’라는 거였다. 그것도 한글로 쓴 게 아니라 로마자로 ‘Heart Saver’라고 써서 제주도지사 이름으로 상을 줬댄다. 기사를 접한 이 분이 전화로 따졌는데, 이게 무슨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말인지라 고칠 수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란다. ‘Doctors without borders’는 ‘국경없는 의사회’로, ‘President’도 ‘대통령’으로 번역해서 부르는데, 왜 이 말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건가?
▲소방청에서 '세이버'들에게 주는 배지 디자인
*출처 - 소방청, 소방청 누리집(보도자료 보러 가기)
자기는 상대도 안 해 줘서 한글문화연대에 이 사태를 알리니, 좀 나서서 고쳐주면 좋겠다고 부탁하길래 그러마고 답하고 관련 내용을 전자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곧 편지가 왔고, 조사해보니 하트 세이버만 있는 게 아니라 ‘브레인 세이버, 트라우마 세이버’도 있었다. 하트 세이버는 만든 지 제법 된 걸로 아는데, 그 사이에 요런 남매들을 만든 것이다. 직원 한 분이 공문을 써서 소방청에 보냈다. 열흘가량 지나서 답이 왔다. 바로 바꾸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바꾸도록 노력하겠단다. “귀하께서 제안하신 각 세이버 제도의 명칭을 우리말로 개선하도록 하는 부분은 자체검토 후 구급대원 및 국립국어원 누리집 등 의견을 반영하여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정도 답변이면 제법 괜찮은 축에 속한다. 6.25관련 어떤 공적 기구에서 ‘국민 서포터즈’라는 말을 썼길래 이를 쉬운 말로 고치라고 했더니, “홍보할 시간이 부족하여 응원단 등보다 쉬운 서포터즈라는 말을 썼다.”고 싸가지없게 답한 문서를 받은 적도 있다.
“안녕하십니까? 보내 주신 답변 잘 받았습니다.
안 그래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하트 세이버' 뿐만 아니라 '브레인 세이버', '트라우마 세이버'까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고 좀 심하게 표현하면 자발적인 영어 식민지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합니다. 자발적이며 별 저항없이 쓰인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보다 더 심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제가 전화하니 어느 단체냐고 묻고 그냥 개인이라고 하니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니 귀단체에서 조취를 취하니 결과가 다르네요. ~ ^^
또한 상세히 결과를 알려주셔서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요즘에는 각 방송에서 "워딩"이니 "언박싱"이니 하는 말을 많이 써서 거슬리던데 "단어 선택" 이나 "어휘 선택", "상자 개봉" "상자 열기" 란 말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것도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그 평범한 시민께 결과를 알려드렸더니 이런 편지를 보내오셨다. 우리 민족과 민족문화에 대해 자긍심이 높은 분일까?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이 편지 내용 일부를 공개해도 되겠냐는 우리 질문에 온 답글을 보니, 국문학과 영문학 석사를 각각 받고 영문학 박사를 하신 분이다. 대학에서 영어 가르치셨고. 누가 이 분한테 ‘Korean Saver!!’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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