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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무늬만 한글, 영어로 범벅된 화장품 - 이강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9. 11. 26.

무늬만 한글, 영어로 범벅된 화장품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이강진 기자

rkdwls1348@naver.com


이제는 영어가 남용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쉽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화장품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아무리 ‘케이(K) 뷰티’가 세계적으로 유행이라 해도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장품에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화장품 분야의 영어 남용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제품명부터 광고문까지 영어투성이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수딩 크림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수딩 크림 


순한 성분과 좋은 효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수분 크림의 이름이다. 한 제품의 이름이 다섯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특이한데 전부 영어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심지어 이 화장품을 제조하는 ‘ㄷ’사는 한국 회사이다. 아마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 제품이 ‘크림’이라는 것 외에는 이름을 보고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할 것이다. 제품의 광고문은 어떨까? ‘논코메도제닉’, ‘All day(올데이) 밀착케어’, ‘슬리핑팩’, ‘시카컴플렉스’ 등 곳곳에서 영어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논코메도제닉’이나 ‘시카컴플렉스’는 생소한 단어라서 정확한 뜻을 알고 싶으면 따로 알아봐야 한다. 논코메도제닉에서 ‘코메도’는 ‘여드름’ 또는 ‘피부의 분비관을 막고 있는 피지’를 뜻한다. 여기에 부정의 뜻을 지닌 ‘논’을 붙여 모공을 막지 않는 화장품 즉, ‘여드름성 피부에 적합한 화장품’을 뜻한다. ‘시카컴플렉스’는 ‘병풀 추출물’을 뜻하는 ‘시카’에 ‘복합체’라는 뜻을 가진 ‘컴플렉스’를 합쳐 여러 가지 병풀 추출물을 배합한 성분을 말한다. 이처럼 한국 사람을 주 소비층으로 삼는 화장품이면서도 광고에 영어를 남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이프 미 릴리프 모이스처 클렌징 폼

▲세이프 미 릴리프 모이스처 클렌징 폼


국내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화장품 평가 어플인 ‘화해’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세안제이다. 국내 제조사 ‘ㅁ’의 제품이며, 제품명은 문법적으로도 어색한 영어 단어의 나열이다. 역시 광고문에서도 영어가 남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균형 있는 피부 밸런스 유지’, ‘원터치 형식의 캡’, ‘풍성하고 미세한 마이크로 버블이 세정력과 거품력을 모두 만족시켜 줌’


먼저 ‘균형있는 피부 밸런스 유지’는 균형이란 단어를 쓰고 ‘균형’의 뜻이 들어있는 밸런스라는 단어를 쓸모없이 사용했다. ‘원터치 형식의 캡’은 한 번의 접촉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뚜껑을 뜻한다. ‘원터치’가 언어의 경제성을 위한 거라 해도 과도한 외국어 남용이며 뚜껑이라 칭할 수 있는 캡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세한 마이크로’라는 말도 ‘마이크로’에 이미 ‘미세한’이라는 뜻이 있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명확한 한국어 있지만 영어 선호해


화장품을 펴 바르는데 사용하는 ‘브러쉬’와 화장을 지우기 위해 1차 세안제로 사용하는 ‘리무버’는 각각 ‘솔’과 ‘제거제’라는 명확한 한국어가 있지만 영어로 쓰인다. 또한 ‘선크림’은 ‘자외선 차단제’라는 한국어로 바꿀 수 있다. 자외선 차단제의 줄임말인 ‘자차’라고 부르기도 하여 언어의 경제성도 있다. 심지어 영어권 국가에서는 자외선 차단제를 ‘선크림’이 아니라 ‘선스크린’ 또는 ‘선블록’이라고 한다. 서양 화장품 가게에서 ‘선크림’을 달라고 하면 ‘태닝용 크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위의 사례들은 수없이 많은 영어 남용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밖에도 ‘오일리(기름진)’, ‘텍스쳐(질감), 스패츌러(납작한 주걱), 쿨링(식힘), 오일프리(기름무함유), 유존(볼, 입, 턱 부위), 티존(이마, 코 부위) 등 화장품의 특성을 설명하는 광고문에도 과도하게 영어를 사용하여 소비자의 이해를 방해했다. 아이라이너, 크림, 파운데이션, 파우더처럼 이미 굳어진 화장품의 명칭은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영어는 어디까지나 외국인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 한국인들 간의 의사소통에 영어를 남용할 이유가 없다. 화장품 제조사들은 불필요한 영어 남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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