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312] 성기지 운영위원
다 되어 가는 일이 뒤틀리는 것을 “산통이 깨지다”고 한다. 이때의 산통은 점치는 데 쓰는 산가지를 넣은 통을 가리킨다. 산가지는 숫자를 세는 데 쓰던, 젓가락처럼 생긴 물건이다. 산통을 흔든 다음에 산가지를 뽑아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점쳤다. 이때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산통을 빼앗아 깨뜨려 버렸는데, 이처럼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게 뒤집어 버리는 것을 두고 “산통 깨다”고 하게 되었다.
요즘 나라 안팎에서 산통 깨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중국과의 우호적 협상을 바라는 미국 기업인이나 일부 공화당 의원들에게는 홍콩 인권법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그럴 것이다. 남북의 평화 공존을 갈망하는 우리 정부로서는 뜬금없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의 지도자가 그럴 것이고, 입시 사교육 폐해를 줄이고자 학생의 종합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정성평가에 공을 들이던 일선 중등 교사들에게는 교육부의 느닷없는 정시 확대 정책이 또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산통을 깨는 일이 모두 그릇된 판단이라고만 여길 일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산통 안의 산가지가 이를 부정한다면 산통을 깨뜨려서라도 행복권을 지키고자 할 것이다. 그것처럼 국가나 사회도 그 구성원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산가지가 가리키는 운명을 거슬러 외부의 힘에 맞설 수 있다. 다만,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무시하거나, 자국의 체면과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권위를 짓밟는 파렴치함만은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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