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313] 성기지 운영위원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우리 세대가 추운 겨울에 할 수 있었던 놀이는 주로 썰매 타기와 연 날리기였다. 특히 시린 손으로 얼레를 돌리며 연을 날리던 추억은 찬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한없이 다사로운 기억으로 떠오른다. 얼레는 연줄을 감을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기구이다. 그런데 연이 바람을 제대로 타게 되면 얼레에 감긴 줄을 모두 풀어줄 때가 있다. 이처럼 “연을 날릴 때에 얼레의 줄을 남김없이 전부 풀어 주다.”는 뜻으로 쓰이는 순 우리말이 ‘망고하다’이다.
연줄을 망고하고 나서 까마득히 하늘로 날아가는 연을 바라보던 아이. 쉰 해가 흐른 지금에도 그 아이의 아련한 마음이 생생하다. 이 ‘망고하다’는 말은 또, “살림을 전부 떨게 되다.”라든가, “어떤 것이 마지막이 되어 끝판에 이르다.”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 “주식투자가 실패하여 망고했다.”처럼 쓸 수 있다. 요즘에는 대개 한자말로 ‘망했다’라고 하지만, 본디 그 자리는 순 우리말 ‘망고했다’가 있던 곳이다.
살림을 모두 날려버린다는 우리말 ‘망고’와 발음이 비슷한 열대과일 ‘망고(mango)’가 있다. 그 때문인지 학생들에게 ‘망고하다’를 알려주니 (과일 이름에 ‘하다’를 붙이는 것을) 신기해한다. 그래서 ‘자몽하다(自懜—)’도 사전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비록 한자말이지만, “졸릴 때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이다.”라는 뜻으로 한국어사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이미 향기를 잃어버린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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