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349] 성기지 운영위원





해질 무렵 바닷가에 앉아서 저녁놀을 감상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멀리 수평선 위에서 하얗게 번득거리는 물결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을에 물든 이 물결을 토박이말로 까치놀이라고 한다. 먼 바다의 까치놀을 등지고 떠 있는 고기잡이배는 평화롭다. 하늘도 바다도 그리고 사람도 평화롭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평화롭지 않다. 도시의 일상에서 누려 왔던 평화는 석양을 받은 까치놀인 듯 멀리서 번득일 뿐 아무리 애써도 손에 닿지 않는다.


눈만 빼꼼히 내놓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생활한 지 8개월여. 승강기 안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도 말 한 마디 건네기가 어려운, 감염병에 유폐된 2020년. 텅 빈 가게를 지켜야 하는 자영업자에게도, 숨 한번 크게 내쉬지 못하는 직장인에게도 나날살이는 무척 팍팍하고 고달프다. 사람들은 모두 까치발을 하고 잘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넘겨다보지만, 아직은 바이러스 없는 나날 모습이 흐릿하기만 하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아침을 맞이한다. 밤새 까치둥지를 지은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선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일터에서 바쁘게 까치걸음을 친다. 저녁노을이 수평선 위에서 까치걸음을 치며 까치놀을 만들어내듯, 노을빛에 물든 하늘과 바다가 평화로운 누리를 만들어내듯, 우리의 까치걸음이 만들어낼 평화로운 내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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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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