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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다시 어머니 이야기

by 한글문화연대 2014. 7. 31.

[우리 나라 좋은 나라-43] 김영명 공동대표

 

어머니가 집을 나와 병원과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세 해 하고도 반이 다 돼 간다. 모닥불은 다 꺼졌고 부지깽이로 재를 뒤적이면 남은 불씨가 가물거린다. 언제 돌아가실지 알 수 없다. 1년 뒤가 될지 한 달 뒤가 될지...


상태의 오르내림이 있기는 하나 점점 정신이 가물거려 간다. 몸은 오히려 살도 오르고, 얼굴이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하니 점점 나빠져 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점점 쇠약해져 가는 것이리라.


파킨슨 병이 있어서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는 침대 위를 뱅뱅 돌 듯 하시더니 약을 계속 복용한 덕분인지 그런 증상은 진작 없어졌다. 처음에는 침대 밖으로 내려와서 기어 다니려고 하고, 벽장이나 찬장 위에 무엇이 있는지 자꾸 확인해 보자고 하였다. 치매 증상이었다.


치매라는 것이 가족들을 괴롭힌다고 하지만, 그것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어머니는 위 증상 외에도 먹는 것을 밝히는 증상을 보였다. 우리만 보면 먹을 것 달라고 보채었다. 그러나 우리가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증상도 없어졌다, 이제 치매 단계도 지난 것 같다. 거의 인지 능력이 없어졌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신다. 마지막으로 나보고 아들이라고 말 한 것이 몇 주 전인데, 그때도 오락가락 하다가 오랜 만에 알아보신 거였다. 앞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한 번 나를 알아보실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쓰다 보니 독자들을 슬프게 만든 것 같은데, 나는 슬프지 않다. 그저 지나가는 인생 행로로 생각하고 자연 법칙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어머니가 대견스럽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양원에 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로 요양사 선생들을 곧잘 웃기기도 하셨건만, 이제 그런 단계는 다 지났다.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내가 어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이제 “몰라!” 밖에 없다.
   “엄마 내가 누구야?”
   퉁명스럽게
   “몰라!”
   “아들이지 아들, 아들도 몰라?”
   “몰라!”
   아, 최근에 다른 말도 들었다.
   “엄마 밥 많이 먹었어요?” 했더니
   “주지도 않고 뭐라노?” 하셨다.
   참, 아기 옹아리 하는 거 보고 좋아서 “여보, 여보 이리 와 봐요. 얘가 말을 해요!” 하는 것과 비슷하네.


실상 죽음을 앞둔 노인은 갓난아기와 흡사하다. 얼러야 하고 뉘어야 하고 기저귀 갈아야 하고. 말투도 아기에게 하는 것과 같아진다.


다른 점이라면, 아주 중요한 차이이지만, 아기는 귀엽고 노인은 귀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인생이고 자연인 것을.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돌며 사람은 왔다 간다.


어머니가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하시고 대화도 안 되니 주말마다 가 뵈는 것이 이제 점점 시들해져서 두 주에 한 번씩 가기도 한다. 가봤자 별로 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상태를 확인하고 몇 마디 독백을 하는 것으로 그친다. 몸에 손대는 것도 싫어하시니 잘 만질 수도 없다.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또 요양원에 가리라.
 “엄마 나 왔소. 내가 누군지 알겠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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