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이 비석을 옮기는 자는 화를 입을지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29.

  예로부터 비석은 늘 한자로 쓰여 있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한자가 비문에 새겨졌고, 조선시대 때 세종이 한글을 널리 반포한 이후에도 비석에 한자가 사용됐다. 이것은 최근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묘비석 중 대다수는 한자로 만들어져있다. 그렇다면 한글 비석은 없을까?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을 검색해 보자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한글 비석이 전국에 3개 정도가 있었다. 서울 노원구의 ‘이윤탁 한글 영비’ , 경기도 포천의 ‘인흥군 묘계비 ‘,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산불 조심 비석’ 이다. 

 그중 이번에 방문한 비석은 서울시 노원구 ‘이윤탁 한글 영비’이다.  다른 비석 또한 부분적으로 한글로 쓰여 있고, 추정 시기 역시 조선 중-후기라 가치가 있지만, 이들 비석 중 국가지정 문화재(보물 1524호)로 등록된 것은 ‘이윤탁 한글 영비’뿐이다.

1.png


 노원역에서 1138번 초록 버스를 타고 약 15분쯤 지나니 '한글비석로' 라는 간판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사방이 한글비석로로 둘러싸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한글 비석이 있는 위치로 가는 표지판은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글 비석을 찾아가기 위해 전화기 위치확인장치(GPS)를  이용했다. 지도를 따라 몇 분 걸어가다 보니 계단이 보이고 ‘보물 1524호 이윤탁 한글 영비’ 라고 쓰여 있는 보라색 표지판이 보인다. 도로가 생기면서 비석이 원래 위치보다 10미터 정도 뒤로 옮겨졌다고 하더니, 아예 언덕 위로 올라간 모양이다.


한글영비


 한글 영비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1536년(중종31)에 이윤탁과 그의 부인 고령 신씨를 합장한 묘 앞에 세운게 바로 이윤탁 한글영비다. 원래 이윤탁 묘역은 오늘날 태릉 자리에 있었지만, 문정황후 윤씨의 묘를 태릉에 만들면서 부인 고령신씨 묘로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가가서 본 영비는 울타리로 가로막혀 있었다. 영비 주변에는 영비를 수호하는 석고상이 마주보며 서 있고, 영비는 오랜 세월 풍파의 흔적을 담은 듯  회색을 띄고 있었다.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지만, 오백 년의 세월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징으로 새겨둔 글씨마저 희미할 뿐이었다. 비문의 모든 글자가  한글로 적혀있는 건 아니었다. 앞 부분과 뒷 부분에는 전형적인  옛날 비석 모습인 한자가 적혀 있었고 옆 부분에만 한글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인즉, ‘ 이 비석을 옮기는 자는 화를 입을지어다’ 이런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초라한 모습의 비석이었는데, 이게 문화재 보물로 까지 지정되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 ’한글영비’ 복제본 비석  좌우내용 >< ’한글영비’ 복제본 비석 좌우내용 >


[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한글영비' 자료 참고 내용]

이 ‘한글 영비’는 국어 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 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묘를 돌아보고 내려오면서 지나가던 노원구 사는 김원효(21) 씨에게 "한글 비석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매번 지나가면서 비석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특별히 뭐를 위해 세운 지도 모르겠고, 어떤 면에서 가치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이런 한글 비석에 대한 홍보가 지역주민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계가 케이팝에 열광하고, 한글의 과학적인 우수성에 감탄하고 있을 때 정작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글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서울시 노원구는 지금이라도 우리 한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윤탁 한글 영비' 길 안내 표시와 자세한 설명판을 설치해 한글 비석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에 나서야 한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1기 이종혁 <ququ01@naver.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