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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목적지가 어디라고요? 외계어가 난무하는 주거 단지 - 윤영우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1. 7. 26.

목적지가 어디라고요? 외계어가 난무하는 주거 단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윤영우 기자

brume98@naver.com

 

(알 수 없는 외래어로 된 주거 단지 간판들)

 

 

스마트트라움’, ‘프라디움’, ‘더프레티움’, 이 뜻을 알 수 없는 외래어들은 최근 3개월 동안 입주를 시작한 신축 주거 단지들의 이름이다. 주거 단지 이름에 덧붙이는 이 외래어들은 일명 주거 단지의 펫네임이다. ‘펫네임이란 특정 상품들의 특징을 강조하는 일종의 애칭이다.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자주 이용하던 것이 최근 주거 단지에도 사용되고 있다.

 

과연 이 외래어 애칭들이 주거 단지들의 특징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을까? 앞서 이야기했던 예시들의 뜻을 찾아보았다. ‘프라디움자부심을 뜻하는 ‘pride’사람을 뜻하는 ‘I’ 그리고 을 뜻하는 um’의 합성어다. 설명을 읽고도 한참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름이다. 주거 단지 분양안내 누리집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곳들도 있어 의미를 유추해 해석해보기도 했다. ‘스마트트라움영리한을 뜻하는 영어 ‘smart’을 뜻하는 독일어 ‘traum’의 합성으로 보인다. 발음이 같은 외래어들을 조합해 예상한 것으로, 뜻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다. ‘프레티움가치, , , 을 뜻하는 독일어 prétĭum에 관사 ‘the’를 붙인 것으로 예상된다. 주거 단지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애칭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설명이 있어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주거 단지의 특징과는 큰 관련성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주거 단지의 가치를 높이려는 주민들의 욕구와 외래어 이름이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고정관념에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주로 조합에서 이름을 결정하는데, 최근에는 공모를 거친 뒤 조합원 투표를 거쳐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름을 정할 때 주민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전했다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 브랜드에 지역명을 붙이는 게 워낙 흔해지다 보니 이제는 독특하거나 세련됐다는 이미지를 주는 외국어 합성어를 선호하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거 단지 이름을 공모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주거 단지의 이미지를 고급화하고 집값을 상승시킬 수 있는 작명을 하고자 하는데, 이때 외래어에 대한 강한 선호가 나타난다. 그 결과 외래어들을 합성해 뭔가 있어 보이게하는 작명 경쟁에 나서면서 오히려 의미와 의도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주거 단지 이름들이 생겨나고 있다. 주거 단지의 이름을 외우지 못해 부모님이 자녀의 이사한 집을 찾아오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들이 바로 이 외계어 같은 작명법이 초래한 상황이다.

 

이처럼 고급스러움을 위한 외래어의 남용은 주거 단지 내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지 안의 공공 편의 시설 대부분이 영어 간판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KIDS ROOM(놀이방)’, ‘SENIOR CLUB(노인회관)’, ‘MOMS LOUNGE(엄마 휴게실)’, ‘COMMUNITY CENTER(편의 공간)’ 등 우리말로도 쉽게 바꿔 쓸 수 있는 명칭들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임에도 영어가 낯선 이들은 도리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외래어 주거 단지가 난무하는 가운데, 토박이말을 사용하는 주거 단지도 있다. 토박이말 이름의 주거 단지는 코오롱건설의 '하늘채', 금호건설의 '어울림', 한화의 '꿈에그린', 대한주택공사의 '뜨란채, 참누리', 부영의 '사랑으로'가 있다. 토박이말 주거 단지 이름의 뜻을 살펴보자. '하늘채'는 코오롱건설이 2000년에 발표한 아파트 이름으로 '하늘'과 주거 공간을 의미하는 ''의 합성어이고 "내가 하늘이 되는 나의 무대"라는 뜻을 가진다. 금호건설의 '어울림'은 아파트 고유의 특성인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것으로 '한 데 섞이다, 조화되다'라는 뜻이라고 소개한다또한 한화건설의 '꿈에그린'은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 주거 공간을 뜻하며, 인간중심과 환경친화적 자연주의 미학의 아파트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표현했다. 사전을 뒤져가며 의미를 유추해야하는 외래어 주거 단지 이름들보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부영주택(사랑으로), 코오롱건설(하늘채), 금호산업(어울림)도 각각 애시앙’, ‘더 프라우’, ‘리첸시아라는 외국어 상표명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또한 꿈에그린이란 순우리말 브랜드를 사용했던 한화건설은 지난해 8포레나라는 고급화 브랜드를 출시했고, 기존 꿈에그린포레나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몇 안 되던 토박이말 주거 단지 이름조차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람’, ‘윤슬’, ‘온새미로’, 각각 강과 호수’,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물결’, ‘자연 그대로의라는 뜻의 토박이말이다. 이 세 가지 단어는 입지 특성을 부각하기 위해 붙인다는 리버()’, ‘루센트(은은한 햇살)’, ‘포레()’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미를 알 수 없고 어법조차 맞지 않아 외국인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어 이름보다는 뜻과 소리가 좋은 토박이말을 사용한 이름이 더 고급스러운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건설 관계자들과 주거 단지의 주민들이 앞장서서 주거 단지에 어울리는 토박이말 이름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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