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은 없고 시니어 클럽만 있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김미르 기자

jjs1550@khu.ac.kr

 

카페에 가면 영어로만 쓰인 메뉴판이 걸려있고 버스를 타면 하차 대신 스탑(Stop)이라고만 적혀있는 벨뿐이다. 노인정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시니어 클럽(Senior Club)만 보이는 게 요즘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를 간단한 영어로 여기며 이해할 수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다. 생활 속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영어가 가득한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을까? 정 모 할머니와 조 모 할아버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상의 노인이 집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노인정에 들르고 버스를 타고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카페를 방문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한 노인이 자녀에게 요새 유행하는 스마트폰을 선물 받아 사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와이파이와 데이터, 에어플레인 모드 등의 단어가 나타나면 진땀을 뺀다. 실제 정 할머니는 아들딸이랑 손주가 알려주긴 했지만 혼자 있을 때 까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아파트에 사는 노인은 아파트 단지 내 노인정을 찾을 때도 불편함을 호소한다. 정 할머니는 처음 아파트를 들어섰을 때 여기저기 영어만 가득해서 놀랐다. 노인정을 찾으려는데 당최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바로 노인정이 시니어 클럽(Senior Club)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노인정이 영어로만 적혀있어 노인이 이용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외에도 필요할 때 마다 찾아가야 하는 관리사무소는 매니지먼트 오피스(Management Office), 주민 공용공간엔 커뮤니티센터(Community Center)라고 적혀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버스에 내리려는데 스탑(Stop)이라고만 적힌 하차벨이 눈에 띈다. 정 모 할머니는 처음 봤을 때는 정확히 뭔지 몰랐는데 사람들이 내릴 때 누르길래 저게 하차벨이구나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노인들은 동주민센터에서 정부가 운영하는 복지제도를 이용할 때도 어려움을 겪는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자인 노인과 장애인 등이 본인이거나 세대원일 때 전기 요금과 난방 요금을 감면받거나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설명 없이 에너지 바우처 제도의 이름만 들었을 때 바로 이해하고 신청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도 이름만 듣고는 뭔지 모르고 지나치는 노인이 많을 것이다. 외국어 투성이의 어려운 말은 노인이 복지혜택을 누리는데 장벽이 된다. 복지제도 속에서 노인을 '실버', 돌봄이나 수발을 '케어'로 부르는 것도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이다.

 

영어로만 쓴 카페 메뉴판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영상 속 화면

 

이러한 어려움은 노인이 카페나 음식점을 방문할 때도 나타난다. 카페에 들러 음료를 주문할때도 직원이 테이크 아웃이세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곧바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노인이 많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영상을 통해 무인 판매기(키오스크)에 나오는 매장에서 식사테이크 아웃(Take out)’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선택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트를 갈 때도 마찬가지다. 계산대가 아니라 캐셔(Cashier)로만 적혀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누구나 방문하는 공공기관, 가볍게 이용하는 카페에서도 노인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쓰이는 공공언어는 국민의 삶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다루기에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국어기본법 제141항에는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용어가 영어라면 이는 차별 또는 폭력으로 볼 수 있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영어를 대신할 우리말이 있는 경우에 꼭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 영어를 아예 모르거나 배운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 할머니의 배우자 조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헷갈리는 영어를 마주할 때 마다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급격히 안 좋아진다.”라고 말했다. 외국어 능력에 따라 국민을 차별하면 안 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던 목적,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과 말을 쉽게 드러낼 수 있게 하라.’를 되새겨봐야 할 때이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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