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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식폭행, 확찐자, 확대범...” 나만 불편한가요? - 양서정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1. 9. 1.

식폭행, 확찐자, 확대범...” 나만 불편한가요?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양서정 기자

1023ashley@naver.com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확대범표현이 인상적이다. 이는 학대 범죄를 저지른 학대범을 살짝 바꿔 긍정의 뜻으로 만든 표현으로 동물 확대범’(동물을 잘 보살펴 살을 찌움) 등으로 쓴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 많은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인 동물 학대를 이용해 만든 단어를 동물 친화적인 상황에 사용함으로써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약화한다는 우려가 있다. 심지어 이러한 언어유희는 원래 단어와 함께 쓰일 법한 수식어들과 자주 붙어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가출하고 싶다는 여중생 2명을 데려와 두 달 동안 공부시킨 남성을 두고 성적(成績) 확대범’(성적이 오르도록 함)이라고 부른 일까지 있었다. 이 남성은 선의를 베풀었음에도 뜻하지 않게 유괴범으로 몰려 경찰에 체포됐는데, 이후 재판에서 여중생들의 진술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성적(性的)학대가 강력범죄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이와 소리가 비슷한 성적(成績)확대라는 표현을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써서 범죄 행위를 희화화하고 그 심각성을 약화시켰다는 점이 큰 문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정치,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 언어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서도 확찐자는 집에만 있다 보니 살이 확 쪘다는 의미로 쓰이는 신조어로, 코로나19 감염 확진자와 소리가 같다. ‘확찐자는 다양한 대중매체에 글과 짤(인터넷 공간 속에서 돌고 도는 각종 자투리 이미지 파일), 그림 등으로 등장하고 뉴스, 신문 등 공식적인 매체에까지 그 사용범위를 늘려나가며 큰 인기다.

 

 

이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사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아직도 하루에 수많은 사람이 양성 판정을 받는 상황 속에서 확진자와 비슷한 단어를 언어유희적으로 가볍게 사용하는 것은 확진자 당사자와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아픔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또 사전에 등재된 확진자의 공식적인 발음은 [확찐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과 구두로만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에 너네 식폭행이라는 말 들어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글쓴이는 친구가 아 오늘도 식폭행 당했다~’라고 썼는데 원래 있던 말이냐. 성폭행에서 따온 것 같다아무리 장난이어도 도를 넘는 것 같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폭행은 특정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음식을 아주 배부르게 먹게 됐을 때 쓰는 신조어다. 식폭행의 어원은 명확히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주로 당했다라는 표현과 함께 쓰이다 보니 성폭행이 연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유튜브에도 많은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들이 자신의 영상에 식폭행을 당했다’, ‘식폭행 당한 썰과 같은 제목을 달아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식폭행 당했다는 표현이 점차 확산되면, 기존 성범죄에 대해 사람들이 점차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가능성이 커질까봐 우려스럽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심각한 상황에서 쓰는 단어의 일부를 살짝 바꿔 유희적으로 쓰는 신조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웃자고 한 언어유희에 죽자고 덤비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식폭행’, ‘확찐자’, ‘확대범등의 신조어들은 자주 사용되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단어들이며 실제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악의를 가지고 사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괜찮다는 것이다. 즉 유머는 유머의 영역에서 봐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도를 넘은 신조어들이 자주 사용되면, 사람들이 범죄행위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나아가 범죄 피해자나 환자 등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즉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폭력, 범죄 단어들을 이렇게 웃음을 유발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원래 단어의 심각성과 조심스러움을 약화시키고, 이는 결국 그 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낮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과거 어느 시대보다 새로운 신조어들이 빠른 속도로 생성되고 있다. 누군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신조어를 만들어 쓰면, 유튜브, 온라인 매체, 광고 등에 순식간에 퍼진다. 특히나 앞서 살펴본 자극적인 단어들은 타인의 관심을 끌고 조회수 및 클릭을 유도하는데 용이해 무분별하게 사용될 수 있기에 더욱 위험하다.

 

최근 범죄와 연관된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예능의 소재가 됐다. 누군가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는 것은 참 끔찍한 일인데, 한국방송공사(KBS)‘12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먹스라이팅’(‘먹다가스라이팅을 합성한 단어)이란 자막이 사용되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그 사람을 지배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우스개로 사용할 수 없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예능에서 희화화해 사용하면 그로 인한 폭력성을 사소하게 만들고 자칫 2차 가해를 야기할 수도 있기에 우려스럽다. 구체적으로 문세윤이 출연자인 라비가 많은 양의 음식을 먹도록 부추기는 장면에서 라비를 가스라이팅 피해자로, 문세윤을 가해자로 설정해 이를 유머로 사용했다. ‘먹스라이팅먹도록 부추긴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하지만 아이들도 보는 예능 방송, 특히나 공영방송에서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신중치 못하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조사해본 결과, ‘먹스라이팅12일 측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한 단어로 온라인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다. 잘 사용하지 않는, 그리고 문제적인 단어를 방송에서 사용함으로써 온라인상에서 그 사용 빈도가 늘어나는 등 오히려 대중에 확산하는 결과를 초래한 면도 있어 문제다. ‘먹스라이팅의 예에서 본 것처럼, 각종 방송사와 언론 등과 같이 큰 영향력을 가진 매체에서 신조어들을 더 신중히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예전의 방송언어가 무조건 표준어만 사용하자는 주의였다면, 요즘에는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기에일상화된 신조어, 인터넷 용어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이 하는 추세다.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을 희화화한 표현,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까지 모두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들은 방송에서 오히려 강하게 지적하고 비판해야 할 대상이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생명과 죽음, 범죄와 관련된 무거운 단어들은 관련 신조어로 웃음을 유발할 용도로 가볍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 차원에서 부정적이고 심각한 범죄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신조어를 퍼뜨리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도 범죄 단어의 의미를 흐리는 표현을 다루는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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