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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케이팝’, 한국어로 부를 수는 없을까? - 김동찬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2. 6. 27.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9기 김동찬 기자

kdc011020@naver.com

 

한국 대중가요, ‘케이팝’은 이제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2021년 2월, 한류 산업의 영향력을 정리한 「2022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미국, 중국, 브라질 등 총 18개국의 한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국을 가장 연상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 ‘케이팝’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4.0%로 1위를 차지하며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한 음원 및 음반 판매량에서도 해외 팬들의 영향력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며, 가수의 누리소통망에서도 다양한 언어로 쓴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음악은 더 이상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에 맞춰 국내 연예 기획사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공연을 열거나 다국적 아이돌을 기획하는 등 해외 팬을 겨냥한 전략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노래 속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로 된 가사의 비중이 매우 높아지는 것 또한 그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활동에 주력하는 한국 가수가 일부가 아닌 모든 가사를 영어로 쓰는 경우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외국어 남용 현상은 전 세계의 소비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한국 음악에서 한국 언어를 잃어간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모순이다. 또한, 맥락상 어색한 외국어를 가사에 남발하여 내용의 통일성을 해치고, 듣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시류를 따르지 않고 한국어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발매하였지만, 오히려 세계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음으로써 한국어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 가수들도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아름다운 한국어 표현을 통해 한국어만으로도 충분히 ‘케이팝’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다섯 가수의 노래를 소개하고자 한다.

 

  • 아이유 - <아이와 나의 바다>(2021)

2021년 발매된 가수 아이유의 정규 5집 수록곡이다. <아이와 나의 바다>를 작사한 아이유는 이 노래에 대해 자신의 20대 전반을 다룬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특이하게 ‘그러나’라는 말로 문을 여는 1절에서는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라는 가사로 대표되는, 화자의 자기혐오가 선명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전에 화자에게 닥쳤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게 된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2절로 넘어가며 화자는 어린 시절 마음속에 간직했던 ‘바다’를 떠올리며 그 곳으로 나아간다. 시간이 지나며 되찾은 스스로에 대한 포용과 사랑 등의 감정을 ‘바다’라는 단어로 함축한 것이 인상적이다.

 

  • (여자)아이들 - <화(火花)>(2021)

2021년 발매된 가수 (여자)아이들의 <화火花>는 오직 한국어 가사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의 정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내 안에 남은 한을 불(火)로 모두 태우고, 찬란한 꽃(花)을 피우리라는 것을 “화를 내리오 더 화를 내리오 잃었던 봄을 되찾게”, “불을 지펴라”, “꽃피우리라” 등의 가사와 중의적인 제목을 통해 드러낸다. 최근 ‘케이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하오체 가사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 또한 인상 깊다.

 

  • 러블리즈 - <지금, 우리>(2017)

2014년 활동을 시작한 가수 러블리즈는 한국어로만 된 노래를 다수 발매한 가수이다. <안녕>, <그대에게>, <종소리>, <그날의 너>,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 <이야기꽃> 등 활동 초기부터 후기까지 한국어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다수 발매하였다. 2017년 발매된 <지금,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의 두근거림을 재치 있는 한국어 표현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진짠가 봐 연인이 될 건가 봐”로 1절과 2절 후렴을, “진짠가 봐 연인이 된 건가 봐”로 약간의 변주를 주어 마지막 후렴이자 노래의 끝을 장식하는 것은 두 사람이 연인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듣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게 한다. 

 

  • 여자친구 - <너 그리고 나>(2016)

가수 여자친구 역시 2015년 활동을 시작한 이래 <유리구슬>, <시간을 달려서>, <귀를 기울이면>, <여름비>, <해야> 등 한국어만으로 된 노래를 여럿 발표하였다. 특히 2016년 발매된 <너 그리고 나>는 아름다운 한국어 가사로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의 ‘대중음악’ 부문에도 수록되었다. <너 그리고 나>는 가사에도 등장하는 ‘나빌레라’를 부제로 하는데, 시인 조지훈의 시 <승무>에도 등장하는 이 단어는 ‘나비 같다‘라는 의미의 아름다운 한국어 표현이다.

 

  • 악뮤(AKMU) - <작별 인사>(2019)

2012년부터 꾸준히 활동 중인 악뮤(악동뮤지션)는 본인들만의 세계를 담은 독창적인 가사로 잘 알려져 있다. 2019년 발매한 정규 3집 [항해]는 이별을 공통 주제로 하여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비롯한 노래들로 많은 청취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특히 수록곡 <작별 인사>는 짧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로 작별을 앞둔 마음과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이처럼 한국어로 ‘케이팝’을 노래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어로 한국 노래를 부른다.”를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먼저 한국어로 노래할 때 가수들이 노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아이유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여자)아이들이 보여준 한(恨)의 노래는 외국어 가사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더하여 재치 있고 아름다운 한국어 표현은 외국어를 사용했을 때보다 노래의 맛을 더욱 살려 주기도 한다. 
또한,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는 세계에 한국어를 알리는 홍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연구에서 한국 음악의 인기 요인을 조사한 결과, ‘중독성 강한 후렴구’, ‘뛰어난 퍼포먼스’ 등에 이어 ‘독특한 발음의 한국어 가사’나 ‘가사의 의미’가 높은 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케이팝’의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어 가사를 이해할 수 있으며, 한국어 가사가 노래를 좋아하게 되는 하나의 특징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케이팝’의 세계화 속에서, 창작자들이 해외 시장을 고려하여 가사 안에 다양한 언어를 어느 정도 섞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 소비자를 지나치게 배려한 외국어 남용이 역설적으로 한국어 청자들을 ‘케이팝’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한국 노래가 한국어를 배척하고 외국어를 남용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한국어 가사는 세계에 노래를 알릴 수 있는 인기 요인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아름다운 한국어 표현을 적극 활용한 노래가 더 많아져 한국어를 더 넓은 세상에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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