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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말모이2, 해방 후 이야기 - 김시원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2. 6. 27.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9기 김시원 기자
akak0506@naver.com

 

사진: 영화 '말모이' 포스터 사진

2019년 영화 ‘말모이’가 상영되고 영화의 배경이 된 이야기, 조선어학회 사건이 이목을 끌었다. 영화 제목인 ‘말모이’의 뜻이 ‘사전’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말 사용이 금지됐던 시기에 조선어학회가 사전 편찬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쳐 노력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의 조선어학회가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단체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의 조선어학회 사건만큼,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의 활약도 중요하다. 해방 직후, 조선어와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조선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조차 부족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민족어를 완벽히 회복할 수 있었을까? 답은 영화 ‘말모이’의 뒷이야기를 알아보면 찾을 수 있다. 해방 후 우리 언어를 잊은 암담한 상황에서도 조선어학회의 활약이 컸다. 영화 말모이에서 다루지 않은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의 활약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해방 후 첫 교과서 편찬

 일제는 식민지 동화정책의 하나로 조선어 교육을 금지하고 일본어 보급에 주력했다. 그 결과, 1943년에 일본어를 이해하는 조선인이 전체의 22.15%가 되었다. 적은 수로 보이지만, 식민주의 언어 동화 3단계에 따르면, 조선의 상황은 지배 언어가 행정 언어를 장악하는 첫 번째 단계를 거쳐 지배 언어가 피지배 민족 전체로 확산한 두 번째 단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회는 조선어의 회복과 국어 교육 재건을 사명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해방 후 첫 국어 교과서를 편찬했다. 주목할 것은 학회가 편찬한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한글 전용과 한글의 가로쓰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한글 전용의 초석을 놓은 것도 세로쓰기의 오랜 관습을 가로쓰기로 바꾼 것도 서사 체계의 변화를 이끈 혁명적 사건이었다.

강습회 개최와 교사 재교육

 학회는 조선어를 잊어버린 조선인들에게 조선어와 한글을 가르치고 국민 교육의 기초를 수립하기 위해 각종 강습회를 개최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습회와 교사 재교육을 위한 강습회, 국어 교사 양성을 위한 강습회가 있었다. 이 중 학회가 주력한 것은 교사 양성 강습회였다. 강습회에는 고등부와 사범부를 두어 1,836명의 국어 교사를 배출했다. 이러한 강습회를 1949년까지 계속함으로써 학회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국어 교사 수급에 크게 이바지했다. 

해방과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

 일제강점기 35년간 동화정책의 폐해는 컸다. 일본어는 우리 생활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었기에 우리말 도로 찾기는 시급한 과제였다. 일본식 간판, 일본식 이름, 일본식 말투를 하루속히 없앨 방도를 찾자는 호소는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였다. 조선어학회에서는 긴 시간 억압받고 말살의 위기에 처했던 조선어를 되찾기 위해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을 모색했다. 일본말과 우리말의 맞대표를 만들고, 사회 여러 단체의 자문에 응하면서 우리말 도로 찾기에 진력했다. 그리고 이는 우리말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의 이야기

 아무리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우리의 말 또한 세계가 변하며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 ‘급식체’라는 단어가 등장할 만큼 다양한 신조어와 줄임말을 사용하는 요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의식 없이 내뱉는 모든 말들은 수많은 땀방울이 맺은 결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신조어를 만들고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다. 새로운 말이 탄생하고 이를 무작정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가 가진 원래의 말과 이를 지키려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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