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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광장문화의 역사로 보는 우리말과 한글 - 한주예슬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6. 7. 27.

 

광장문화의 역사로 보는 우리말과 한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한주예슬 기자

yeseuli8103@naver.com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설치된 프랑스 예술가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의 작품이 점등되어 있다.

 

이 기사를 접하는 분들은 “주제가 우리말과 한글인데 웬 광장문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준비한 ‘광장문화’라는 둘째 기사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으로서 처음 썼던 ‘세종대왕’ 기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 미술을 전공한 나는 자연스럽게 한.불 13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디자이너의 설치미술을 입은 세종대왕상에 주목했고, 이 세종대왕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이 2008년 6월 광화문 촛불시위 이후 세종로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장만의 역사가 있었고, 더 나아가 '광장 권력'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됐다. 어느 석사 논문이었는데, 서울광장을 문화 시설로 바꾸려는 서울시의 전략에 따라 과거 거리정치가 이루어지던 장을 아름다운 '문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권력을 쥐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도시는 애초부터 서구의 광장처럼 ‘사람들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텅 빈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일상성과 친밀성을 가까이하는 문화인 '거리문화'다.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 따지면 '마당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당은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공동체' 공간이지 도시의 광장과는 다르다.

서양의 다양한 광장들/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독일권의 플라츠(platz), 프랑스권의 플라스(place), 영어권의 스퀘어(square), 혹은 미국권의 플라자(plaza)

 

나는, 얼마나 거리정치의 파급력이 컸으면 서울시가 광장을 굳이 문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위 속에 옛 한글이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했는지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졌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나열해 보았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은 2002년 이후에 생겼기 때문에 역사가 짧았다. 그래서 이전에 우리나라의 다른 광장에서 생겼던 사건들도 포함했는데, 실제로 우리나라는 광장의 형체가 명확하지 않아도 서민들이 필요할 때마다 거리를 점령하여 광장 공간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1. 첫 근대적 사건은 3·1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작된 고종황제 장례식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식으로 거행되었다.

 

2. 1945년의 해방,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세종로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1948년 8월, 세종로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같은 시기 조선인민군창군기념일, 단상 뒤 양쪽으로 걸린 태극기가 인상적이다. 당시에는 북한의 정식 국기가 없어 태극기로 대신했다.

 

3. 4·19 학생운동을 뒤따른 대다수 민주화운동이 이 거리를 점거했다.

4.19혁명 당시 대학생들의 운동 모습.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출처-보험고수님의 블로그

 

이승만 하야와 민권의 승리 4월. ‘수습의 길은 대학생에 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4. 가장 최근의 역사는 1987년 6월,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다.

이한열 열사사건 출처-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은 결국 6·29선언을 끌어내었는데, 이 당시 사진을 다시 현대화해서 걸어둔 모습은 압도적으로 웅장하다. 그림과 더불어 쓴 글씨체에서 더욱 강렬한 호소가 느껴진다.

동국대 고 노희두형은 4월 19일 의거시에 애국학생운동의 선봉자로서 참가하여 열렬히 투쟁하다가 경무대 앞에서 총탄에 맞아 청운의 꿈을 못다 이룬 채 22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세상을 떠났다.

 

5. 그리고 현대에는 점점 더 글씨를 부각하는 시위가 많아졌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청계천 촛불시위 현장스케치

광화문광장에 모인 세월호 사건 시위 시민들

6. 그중에서도 이례적으로 최고의 기억으로 남는 것은 2002년 6월 월드컵 경기였다. 광장의 공공역할이 가장 긍정적으로 작용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6월, 열기가 대단했던 광화문 광장 속 ‘대~한민국’ 글자가 보인다. 순식간에 광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술같은 능력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

한글 붓글씨체로 쓴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

 

7.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일인시위와 함께 많은 분량의 글이 있는 대자보 형태에 이르렀다.

빼곡하게 포스트잇으로 붙여진 강남역 사건 10번 출구 추모현장

역사는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네거리를 점령했던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지금은 거리도 우리들의 광장이 되어, 온몸으로 시위를 하기보다는 한 장의 글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한글과 우리말은 역사 속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담겨 우리와 온전히 함께하였다. 한글 가득 적힌 대자보를 볼 때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한 언론 속에서 대자보를 붙여야 할 만큼 절박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렇게도 아주 현실적인 곳에 우리말과 한글이 있음을 느낀다. 앞으로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건들이 광장과 함께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글과 우리말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시민들이 될 수 있으면 한다.

광화문광장 임시 정부 수립일을 나흘 앞두고 애국선열에 대한 시민들의 감사 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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