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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세종의 마음 이해하기 - 정희섭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6. 7. 27.

세종의 마음 이해하기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정희섭 기자

jheesup3@naver.com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배우와 세종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할 15세기 당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기득권층(당시 양반 혹은 사대부)들은 백성들이 문자를 아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백성들이 당대 기득권층에서 통용되던 문자인 ‘한자’를 아는 것은 책을 포함한 모든 문자로 된 것을 읽을 줄 안다는 뜻이었다. 무언가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책을 통해 사물이나 현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불합리함과 공평하지 못한 부분을 백성들이 깨달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국가 권력에 대항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2011년 24부작으로 제작되어 시청률 25.4%(닐슨코리아 제공)라는 높은 수치로 막을 내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이와 관련한 당시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한 누리꾼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려는 노력이 담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자를 몰라 편지 한 줄 쓸 수 없는 백성들조차 글자 만드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며 시원찮게 생각한다. 왕과 함께 나라를 꾸려나가야 할 신하들은 혹자는 질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한글 창제를 반대하고 혹자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까 싶어 반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세종은 ‘어린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한글 창제 반대의 벽을 뛰어넘었다.


세종은 자신의 백성들이 누구나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알며, 옳고 그름을 올바로 구별하지 못해 죄를 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원했다. 이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세종은 평범한 백성들이 이해하기 ‘쉬운’ 문자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훈민정음의 핵심이었다. 현상의 이치를 바르게 깨닫고 무엇이 올바르지 못한 일인지 알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 출발점은 바로 글자를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세종이 한글을 반포할 당시 선포했던 말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애민정신이 온전히 담겨 있다. 그 말은 다음과 같다. “이 글은 아주 손쉬운 것이라. 지혜가 부족한 사람도 열흘 안에 깨우칠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까지는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백성을 가르치는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한자에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소리를 쉽게 표현할 수 있어, 이 글을 얼른 깨우치고 책도 읽고 이치도 깨달아서 이젠 죄를 짓지 말아라.” 라고 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이렇게 배우기 쉽고, 여러 가지 표현이 가능한 한글을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누리고 있을까? 쉽게 한글을 깨우칠 수 있다는 장점을 역이용해 어렵고 유식해 ‘보이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 언어를 일부러 들여다 쓰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엄청난 반대와 어려움에도 본인의 애민정신을 버리지 않고 한글 반포를 위해 노력했던 세종의 그 간절한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다양한 소리와 보이는 그대로를 아름답게 표현한 한글, 백성을 향한 한 임금의 일생이 녹아있는 우리만의 한글을 우리는 지금 얼마나 풍성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른 아침 동틀 무렵 동쪽에서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의미하는 ‘샛바람’,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인 ‘하늬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는 남쪽 바람 ‘마파람’, 북쪽 높은 데서 불어오는 바람 ‘높바람’ 등 바람의 이름에서부터 그 특성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를 우리는 지금 얼마나 감추어 두고 있는가. 색깔도 그렇다. ‘검정, 하양, 노랑, 파랑, 빨강’ 다섯의 이름에 파생된 다채로운 이름들이 많이 있다. ‘노랗다’의 경우 노르께하다, 노르끄레하다, 노르무레하다, 노르스름하다, 노릇하다, 노리께하다, 누렇다, 누르칙칙하다, 샛노랗다, 싯누렇다처럼 말이다. 한글이 없었다면, 이런 우리의 토박이말을 어떻게 실감 나게 글로 쓸 수 있었겠는가? 아름다운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쓸 수 있었겠는가?

 

백성들의 삶이 훈민정음을 통해 좀 더 풍성해지고 나아지길 바랐다는 세종의 애민정신을 느끼며 오늘 하루 내 주변 사람들과 생명의 움직임을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 같은 모습을 보며 같은 표현으로 같은 의미를 담아 언제나 똑같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보다 내 입술에서 나오는 다채로운 우리말의 아름다움, 내가 읽는 쉬운 한글을 경험하며 색다른 삶의 출발을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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