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18] 김영명 공동대표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거실을 몇 바퀴씩 돌 때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주로 흘러간 옛 노래가 많지만 때로는 곡에도 없는 가락을 내 맘대로 흥얼거리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돌면서 “엄마 노래 하나 해 줄까요?”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조그맣게 노래 하나를 읊조렸다. 크게 하면 ‘웬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할까봐 남들이 안 듣게 조그맣게 한다. 다 하고 “나 노래 잘 하지?” 했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
예전에 내가 학생일 때 어머니가 방 청소를 하면서 흥얼거리던 노래가 생각난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였다. 어머니는 노래를 잘 하는 편도 아니고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때 내가 국민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고등학생이었는지는 모르겠고, 어머니가 방을 쓸고 있었는지 닦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래는 분명히 봄날은 간다였다.
나에게도 노래방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 노래들을 불렀지만 봄날은 간다도 곧잘 부르곤 했다. 여자 노래인데다 음이 높아 쉽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여럿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잘 따르던 후배 한 사람이 이 노래를 신청해 놓고 나보고 부르라고 무대로 밀어내었다. 아마 내가 그 친구 앞에서 불렀던 적이 있었나 보다. 내 노래가 제법 그럴 듯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장가도 못(안) 가고 혼자 이리저리 다니면서 도깨비처럼 사는 인간이었다. 인간적인 정으로 나를 잘 따랐지만 중요한 순간에 연락이 잘 안 되곤 하였다. 그때부터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뒤로 연락이 잘 안 되거나 약속 잡기 어려운 사람은 굳이 만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그 후배는 도깨비처럼 살다가 도깨비처럼 갔다. 야밤에 자신이 살던 옥탑방에 올라가다가 층층대에서 떨어져 죽었다. 경찰의 추정이다. 진정한 내막은 아무도 모른다. 나의 봄날은 그렇게 한 번 갔다.
봄날은 간다는 영화도 있고 캔이라는 두 사람 그룹이 부른 노래도 있다. 그러나 나의 봄날은 간다는 역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다. 백설희는 어머니와 동년배다. 가수는 가고 없고, 어머니가 가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머지않아 어머니와 함께 나의 봄날은 또 다시 가겠지.
1절보다는 2절이 더 심금을 울린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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