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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아리아리

한글 아리아리 463

by 한글문화연대 2014. 3. 14.

한글문화연대 소식지 463
2014년 3월 13일
발행인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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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바른 높임말] 사람을 제대로 높일 때 나도 존중받습니다.

■ 부름말 17. 이봐, 어이!

부부 사이의 부름말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아내가 남편을 부르거나,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가장 보편적인 부름말은 ‘여보’이다. 본디는 '여봐요'라고 불렀었는데, 한 5, 60년 전부터 이 말이 줄어든 형태인 '여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표준어가 되었다. 남편을 부를 때, '자기', '오빠', '아빠' 심지어는 '아저씨'라는 부름말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에도 부름말을 잘 가려 써야 한다. '여보', '여보게', '임자'라는 말들이 전통적인 부름말이다. 아직도 아내를 '이봐'라고 부르거나, '야!' 또는 '어이!'로 부르는 남편들이 있다면, 일단 혼인 관계를 유지할 뜻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 높임말은 사람을 존중하는 우리말의 아름다운 표현법입니다. 올바른 높임말 사용을 위해 한글문화연대가 만든 책자 "틀리기 쉬운 높임말 33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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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말 이야기] 봄새 별고 없으신지요?_성기지 학술위원

사자성어 가운데 ‘삼춘가절’이라는 말이 있다. 봄철 석 달의 좋은 시절을 뜻하는 말로서 3, 4, 5월을 삼춘가절이라고 한다. 3월 하고도 중순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찬 기운이 남아 있어서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길나무 가지마다에 푸릇푸릇 돋은 싹들을 보니, 곧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봄이 되면서 직장인들은 몸이 자주 나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봄철에 느끼는 나른한 기운을 ‘봄고단’이라고 한다. 흔히 한자말로 ‘춘곤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예부터 우리 한아비들은 “요즘 봄고단을 느끼는지 낮에도 자꾸 졸음이 옵니다.”처럼 말하고 썼다. 봄고단을 이겨내려면 일을 할 때 몸을 되도록 많이 움직이고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가끔 가벼운 몸펴기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또, 봄고단으로 몸이 무거울 때에는 봄철에 나는 싱싱한 채소를 먹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봄에 가꾸어서 먹는 여러 가지 채소를 ‘봄채마’라고 하는데, 쑥이나 달래, 냉이, 두릅 같은 채소가 이맘때 먹는 봄채마라 할 수 있다.

봄채마를 충분히 먹고 건강관리를 잘해서 봄고단을 이겨내야 ‘봄살이’를 장만하는 데 무리가 없겠다. ‘여름살이’나 ‘가을살이’, ‘겨우살이’라는 말이 있듯이, 봄철에 먹고 입고 지낼 양식이나 옷가지를 ‘봄살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봄살이가 그리 쉽지 않아서, 봄철이 지나는 동안 잘 지냈느냐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곤 했는데, 이때 “봄새 별고 없으신지요?” 하는 안부말이 쓰였다. ‘봄새’는 “봄철이 지나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우리말이다.

  ◆ [우리나라 좋은 나라]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_김영명 공동대표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동남아의 한 불교 수행자가 강연을 다닌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기도 한다. 동남아의 불교는 이른바 소승불교로서 개인의 수행을 매우 중시한다. 한국 불교보다 더 엄격한 계율과 수행을 중시한다.

그가 하루는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그의 수행 생활이 얼마나 엄격하고 힘든지를 설명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손수 물을 긷고 밥을 하고 거친 밥을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성생활은 물론 할 수 없고 술도 못 마신다. 오후나 밤중에는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얘기도 최소한으로 해야 하고, 스포츠도 하면 안 된다. 사바 중생들이 즐길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듣던 어느 수감자가 “스님, 그렇게 힘들게 사시지 말고 그냥 여기 와서 우리 하고 같이 계시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동료 수감자들이 왁자하게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감자는 스님에게 농담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고 한다. 자기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스님의 어려운 금욕 생활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수감자의 생활보다 수행자의 생활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수행자가 더 춥고 배고픈 생활을 하기도 다반사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물론 수행자 중에서도 수행이 잘 되지 않거나 윗사람이 부당하게 억압하여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수행자는 그들이 원하여 수행을 한다. 그 반면 교도소 수감자들 가운데 그들이 원하여 스스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행복과 고통이 다른 것은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그것이 자신이 원래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그는 고통을 느낄 것이고, 아무리 남 보기에 어려운 삶이라도 그 삶이 자신이 원하여 선택한 것이라면 그는 보람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감옥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부모님의 의지나 때로는 실수에 따라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던져진 다음에 자연 수명을 누리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 죽고, 어떤 이는 어려서 죽고. 어떤 이는 평생 불구가 되고, 또 어떤 이는 이런저런 불행과 속박 속에 얽매여 산다. 수많은 고통과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우리 인생은 일종의 감옥이다.

그러나 그 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 반대로 살면서 수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 누가 나를 기억해주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어린아이가 갓 태어나 우렁찬 울음을 울 때,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잔설 사이로 돋아나는 새싹이 보일 때, 청명한 하늘에 피어난 새털구름이 갑자기 눈앞에 다가올 때, 잊었던 연인이 생각지도 않게 연락해 올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만고의 진리다. 위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떤 장소든 당신이 그곳에 있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무리 안락하더라도 당신에게는 그곳이 감옥이다.”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면, 그것은 감옥이다. 원치 않는 관계를 끊지 못한다면, 그것도 감옥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당신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고 고통도 아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위 불교 수행자의 말과 같은 말이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의 지혜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쩌랴! 어려워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감옥은 물론 바깥에도 있지만 마음 속에도 있다. 아니 마음 속에 있는 감옥이 밖에 있는 감옥보다 훨씬 더 모질고 끈질기게 사람을 괴롭힌다. 바깥의 감옥을 어쩌지 못한다면 마음의 감옥에서라도 나오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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